가금류 사육농가는 지금 죽을 맛이다. 올 들어 1월 중순 첫 의심 신고가 들어온 이래 살처분된 닭과 오리 등 가금류는 1,015만8,000수에 이른다. 더욱이 전국 각지에서 AI 확진 판정을 받은 가금류 70만1,000수까지 살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사상 최대의 피해를 입었던 2008년의 1,020만수보다 많이 살처분해 금전적 손실이 불가피한 축산농가들은 포유류 감염 소식에 더욱 위축되고 있다. 소비부진이 더 심해질 경우 축산농가의 도산 도미노를 우려해서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처는 안이하다. 질병관리본부의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우리나라에서 2003년 이후 네 차례 발생했던 H5N1형 AI 유행에서도 인체감염 사례는 없었음'을 알리는 팝업 창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2월 인체감염 논쟁이 일고 포유류 감염도 확인된 지금까지도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날이 풀려 기온이 올라가면 AI 확산세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정부가 주춤거리는 사이 이미 서울 턱밑까지 AI가 확산된 마당이 아닌가. 만에 하나 감염이 확산되면 재앙이 아닐 수 없다. 2003년 9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스도 감기에 걸린 박쥐에서 시작돼 사향고양이를 거쳐 감염된 사향고양이를 요리한 요리사와 의사, 결혼식 하객 등을 통해 온세계로 퍼지는 데 불과 이틀밖에 안 걸렸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부는 진상을 정확하게 알려 국민들과 축산농가가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줘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할 때도 됐다. 좁은 공간에서의 산란과 사육을 금지하며 공장형 축산을 생태적 축산으로 변화시키려는 유럽연합(EU)을 벤치마킹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