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회사를 경영하는 이라면 누구나 가장 깊이 관심을 갖는 일이 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그것을 일찌감치 준비한다. 소싯적 기업을 운영할 때도 의정활동을 할 때도 그렇게 해준 보좌진들이 믿음직스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출근하면 한 장의 보고서가 책상 한가운데 놓여 있다. 지난밤 동안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들을 정리한 자료다. 한국도로공사 사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산하기관을 돌며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 과정에서 교통사고와 재난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를 빠지지 않고 챙겨 물었더니 직원들이 그것을 염두에 뒀던 모양이다. 그런 직원들이 있어 항상 든든하다.

그런데 간혹 관련 부서장이 직접 보고를 하겠다며 서류뭉치를 챙겨 들고 오는 경우가 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예사롭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더한 경우는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때다. 이렇게 저렇게 맺어진 지인이 늘고 나이가 웬만한 이라면 그 마음을 잘 알 것이라고 본다. 난데없이 울린 전화벨 소리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겨울철에는 그런 경우가 잦아진다. 그래서 눈 소식이 전해지는 이즈음부터는 항상 기상예보에 귀를 쫑긋 세우고 하늘이 흐려지면 바짝 긴장하게 된다. 몇 ㎜의 눈에도 도로는 위험한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구온난화로 기습적인 폭설이 내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겨울 강원·영동 지역에 150㎝에 가까운 많은 눈이 내렸다. 6일 동안 계속 내리다 보니 일부 지역에는 어른 키에 맞먹는 높이로 쌓였다. 눈이 많기로 유명한 강원·영동 지역에서도 드문 100년 만의 강설 기록이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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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도 없고 눈이나 비도 내리지 않는데 고속도로가 통제되고 있다. 소방차와 구급차가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지나간다. 게다가 여럿의 군인과 경찰이 탄 트럭이 급하게 어디로인가 내달린다. 고속도로를 여행하다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민관군이 함께하는 비상대비훈련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이 같은 훈련이 전국의 고속도로에서 종종 펼쳐진다. 놀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런 장면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속도로는 더욱 안전해진다고 보면 맞다. 겨울이 닥치기 전부터 미리미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때문에 폭설이 내려도 고속도로는 멈춰 서는 법이 없는 것이다.

좋은 기회이니 이 말은 꼭 해야겠다. 고속도로가 국가 대동맥으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운전자의 안전운행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잦은 접촉사고는 차치하고라도 여러 차례 빚어진 대형사고는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눈이 내리면 요소요소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이 제설장비들을 가지고 출동해 재빠르게 눈을 치운다. 그렇지만 그들 또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빈틈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하게도 사고라는 불청객은 그 찰나를 노린다. 그 찰나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가장 현실적 처방은 운전자만이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운전자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교통법규를 지키면 사고의 절반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눈이나 비가 올 때는 속도를 더 줄이고 차간거리도 더 벌리면 또 절반이 줄어들 것이다. 전자에서 절반, 후자에서 절반이 줄어들면 교통사고는 없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계산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운전자 모두가 그렇게만 한다면 교통사고로 생긴 불행한 일로 새벽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안타까워하는 이들은 없어질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우리네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밝고 맑아질 것은 분명하고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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