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선한 인연과 악한 인연 그리고 선악과 무관한 인연 등 3종류로 맺어지게 마련이다. 선연(善緣)과 악연(惡緣)은 부자지간ㆍ원수지간과 같이 특별한 계기로 맺어지는 것으로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많은 인간관계는 무애무득한 인연으로 채워지게 된다.
반대자 포용은 대통령 의무
악연 조차 선연으로 만들도록 노력하라는 것이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다. 부처의 자비심은 이들 세 종류의 인연을 차별함이 없이 똑같이 인자하게 대하는 마음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과 정확히 같다.
원수를 사랑하고, 악연에도 자비를 베풀기란 보통사람은 실천하기 어려운 마음가짐이다. 종교에서 악연을 전생의 인연이라거나, 이승에서 악연을 다하면 내세에선 선연이 된다거나 하며 미지의 세계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상징하는 비유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실천하는 자비와 사랑은 언제나 감동을 주는데 요즘 세상은 그런 감동 보다는 개탄을 자아내는 반인륜적인 사건이 더 많은 것 같다. 선연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연 보다 악연을 만들기가 더 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인연은 쌓기나름으로 잘 쌓으면 선연이요 잘못 쌓으면 악연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역정을 인연으로 풀이한다면 `노사모`는 선연이요, 이른바 `조중동`은 악연이라 할만하다. 노 대통령의 보수언론에 대한 반감은 인권변호사 시절부터였다고 스스로 토로했듯이 그 뿌리가 상당히 깊다. 대통령에게 성자의 덕목을 요구할 필요는 없고, 그것이 유능한 정치의 덕목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보위하고 대표하는 입장이다. 대통령이 보위하고 대표해야 할 국민은 그를 반대하는 국민까지도 포함된다. 대통령의 직무자체가 선연 지향적이다.
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야당정치인 시절 그가 반노무현 성향의 언론과 맞서 싸우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며, 반노언론의 공격이 강해질수록 지지세력의 응집력도 강해졌을 것이다. 인과론적으로 본다면 `조중동` 또한 노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처럼 발상을 조금만 전환한다면 악연을 극복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선연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애무득한 관계로 가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악연을 쌓아가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악연이 다해야 선연으로 바뀐다고 생각해서 일까 아니면 반대세력과의 긴장을 고조시켜 지지세력을 결집해야 할 필요가 있는 정치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해서 일까.
노 대통령은 사비로 1,000만원이 넘는 인지대를 들여가면서 4개 언론사 사장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앞서 청와대도 유사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일부기자들에 대해서는 형사소송까지 제기했다. 해당 언론과의 만남도 기피하고 있다. 지방지와 경제지를 상대로 회견을 하면서도 4개 언론이 포함된 중앙지를 상대로 한 회견은 계획조차 없다.
惡緣해소는 법 보다 대화
대통령의 소송제기에 대해 이들 언론으로부터 오죽이나 시달림을 받았으면 그랬겠냐는 동정론이 있다. 그 점을 인정하더라도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사람은 반대자도 포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외국TV에 출연해서 그 나라 국민들을 상대로 토론외교를 하는 대통령이 국내의 언론에 대해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다. 청와대 내부에서 언론사 상대 민사소송을 퇴임이후로 연기하자는 얘기가 있는 모양이나 당장 취하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본다. 그리고 지방지 경제지와 회견을 하고 나서 중앙지와도 만나기를 바란다. 악연을 푸는 것은 법이 아니라 대화다.
<논설실장 imj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