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25일] <1379> 카네이션 혁명


1974년 4월25일 정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팽팽한 긴장이 도시를 감쌌다. 극우독재정권을 축출한다며 총을 들은 쿠데타군 앞에 진압군 주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시민들이 몰려나와 쿠데타군에게 빵과 밀크ㆍ담배를 건네줬다. 진압군에게 다가간 시민들은 충돌을 자제해달라며 총구에 붉은 카네이션을 꽂았다. 리스본은 곧 카네이션으로 뒤덮였다. 쿠데타군이든 진압군이든 총구에는 카네이션이 꽂혔다. 결국 1932년부터 42년 동안 포르투갈과 그 식민지를 짓눌러온 독재체제는 무너지고 말았다. 쿠데타의 시작은 라디오 방송. 금지곡 ‘그란돌라 빌라 모레네’가 0시20분 전파를 탄 순간 14개 부대가 움직였다. 쿠데타의 이유는 장기독재에 따른 부패와 1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제난. 예산의 30%를 차지하던 식민지 지배 비용을 줄이려면 자치권을 내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육군 참모차장의 해임을 계기로 대위ㆍ소령급 장교들이 총을 들었다. 쿠데타는 시민과 병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진압군 병사들은 쿠데타군과 시민들에 대한 발포 명령을 거부했다. 상황이 종료된 것은 오후7시30분. 거리로 뛰어나온 군중은 ‘자유’와 ‘승리’를 외쳤다. 막판에 경찰의 발포로 시민 네 명이 사망했으나 혁명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혁명은 모잠비크와 앙골라ㆍ기아나 등 압제에 시달리던 식민지에도 자유를 안겨줬다. 혁명 이후 식민지에서 수십만의 인력이 본국으로 귀환하는 등 혼란 속에서도 포르투갈은 좌우파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안정적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소장파 장교들은 정치참여의 유혹을 뿌리치고 병영으로 돌아가 박수갈채를 받았다. ‘유럽의 지진아’로 취급 받던 포르투갈은 정상국가로 거듭났다. ‘20세기판 명예혁명’격인 카네이션 혁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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