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김정일의 과제는 개방아닌 개혁/동용승 삼성경제연수석연구원(기고)

김정일이 드디어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했다. 그동안 특정 시점만 되면 김정일의 공식적 권력승계 시기와 그 가능성을 놓고 세인의 관심이 모아졌다.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일성 사후 3년동안 군부중심의 비상위기관리체제로 운영되어 온 북한이 사망 이전의 정상적인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김정일은 김일성 생전에 인민군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승계했다. 급작스런 김일성 사망 직후 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기반은 군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부적으로 정치권력의 안정적 유지가 필요했으며, 대외적으로 비상시기에 군사적 충돌로 인한 북한체제의 붕괴를 우선적으로 방지해야 했다.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은 체제존립에 대한 위협이 어느 정도 일단락 지워졌다고 북한은 판단한 것이고 비상체제를 마무리하고 실질적 현안에 눈을 돌리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현안은 다름아닌 식량난으로 대표되는 경제문제다.김정일이 안고 있는 북한경제의 문제는 자력갱생의 기조로는 도저히 회생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겪었던 구조적 문제가 북한적 특수성으로 인해 심화된데 기인한다. 북한적 특수성은 주체경제라는 명목하에 비전문가인 절대권력자의 독단적인 정책결정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무진의 단편적이고 경직된 정책운영으로 자원배분이 더욱 왜곡되었던 점을 들 수 있다. 사상 및 정치우선의 경제운영은 파행성을 면치 못한 것 또한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김정일은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먼저 김정일의 경제관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82년 「주체사상에 대하여」 라는 논문에서 경제의 자립을 강조하면서도 대외관계 확대를 통한 자본 및 기술의 협력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또한 인민생활 개선에도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김정일이 80년 6차 당대회에서 공식적인 후계자로 등장한 이후 이러한 내용이 구체적 실례로 나타났다. 우선 80년대 초반 경공업 혁명, 84년 9월 합영법 도입, 8·3 인민소비품 증산운동, 91년 12월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개방, 93년 12월 제3차 7개년 계획 실패 자인과 농업, 경공업, 무역 등 3대 제일주의 채택 등이 그것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에도 대미·대일관계 개선, IMF(국제통화기금)가입 시도, 외자유치 적극화 등은 계속됐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김정일은 북한경제의 개방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경제관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북한은 과거와 같은 내부지향적 경제정책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김정일의 총비서 승계 이후 북한경제가 처한 상황은 김일성 사망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김정일은 김일성과 차별화되는 획기적인 정책전환을 꾀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일성 사망 2년 후에 발간된 김일성 저작집 44권에 세상은 변하였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외국자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 제시되어 있다. 김일성의 마지막 언행을 정리한 이 자료가 김정일에 의해 발간된 것은 김일성의 유훈을 통해 기존의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지금 김정일의 숙제는 개방이 아니라 개혁이다. 더 이상 북한의 개방확대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북한은 나진선봉지역 개방은 물론 다른 지역에 대한 외국기업의 투자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자본은 아직 북한시장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얼마전 발생한 신포사건은 북한의 개혁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사례였다. 개혁이란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정치적 개혁을 의미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판이 바뀐 경제질서에서 사상우위의 정책을 재해석하고, 개방된 시장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개혁이다. 모든 부문에서 사상을 틀어쥐면 해결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급변하는 세계질서에 적응하면서 인민들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김정일의 총비서직 취임은 북한이 경제문제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게 되는 시발점이다. 이미 주변국은 이를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주변국들은 김일성 사후 3년동안 고슴도치와 같이 털을 곤두세운 북한을 되도록 자극하지 않았지만, 최근에 와서는 그 양상이 다소 변하고 있다. 미국은 대북한 경제제재 완화를 대북협상카드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고, 일본은 막대한 전후보상금을 담보로 수교협상 재개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우리의 대북정책을 재점검해야 한다. 북한체제 자체에 대한 공격보다는 북한 경제문제에 정책의 초점을 둠으로써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정책적 지혜가 필요하다. □약력 ▲63년 부산 출생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석사 ▲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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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용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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