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유통 인사이드] 오픈프라이스 시행 6개월

제도 시행 직전 권장소비자 보다는 가격 내렸지만<br>대기업 장악 업체들 '동일 제품 동일 가격' 적용 취지 퇴색<br>제조업체들 용량등 차별화 통해 값 낮춰 정착에 협조하고<br>유통업계도 소비자 편익 극대화 방향으로 접근해야



생존 절박 동네슈퍼 지역마다 값 다르고 최저가 품목도 적잖지만…
SSM·편의점은 담합성 생색내기 가격인하 그쳐
2010년 유통가 최대 이슈는 소비자 선택권 강화로 집약된다. 연말에 터진 통큰 치킨 사태가 소비자 선택권이라는 뜨거운 감자의 클라이맥스였다면, 그 출발점은 지난 7월부터 아이스크림, 라면, 빙과, 과자 등의 품목에 확대 적용된 '오픈 프라이스'였다. 오픈 프라이스는 제조 업체가 제품 포장면에 권장소비자 가격을 표시하는 것을 없애 최종 판매업자가 가격을 매길 수 있도록 한 제도. 제조업체들이 가격을 실효성 없이 높게 설정한 후 대폭 할인해 주는 관행을 없애고 유통 채널 별로 특성에 맞게 개별 제품의 가격이 형성되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실시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유통 업체의 가격 담합으로 소비자에게 이로울 게 없다는 반론과 함께 시장 지배력이 약한 동네 슈퍼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적지 않았다. 이런 기대와 우려 속에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확대 시행된 지도 어언 6개월이 됐다. 반년이란 세월은 오픈 프라이스 제도 시행의 성공 여부를 따지기에는 짧아도 이 제도가 시장에서 어떻게 정착되고 있는지 따져 볼 만한 시간은 돼 보였다. 그래서 서울경제신문 생활산업부 기자들은 ▦강남권 ▦명동권 ▦영등포 권역으로 지역을 나눠 일대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2곳(롯데슈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과 편의점 3곳(훼미리마트, GS25, 세븐일레븐), 동네 슈퍼를 일일이 방문해 소비자가 많이 찾는 10개 대표 품목의 가격을 비교 분석했다. 조사시점은 12월 22일을 기준으로 했다. 분석 결과는 흥미로웠다. 일단 오픈 프라이스 제도는 표면적으론 합격 점을 줄 만했다. 가격 측면에서 보면 10개 품목 모두 오픈 프라이스 제도 시행 이전 마지막으로 표기된 권장 소비자 가격보다 더 내렸고, 가격 표기도 영세한 슈퍼를 제외하고는 양호한 편이었다. 시행 초기 소비자 가격 기준이 없어져 혼선을 초래했던 것과 비교하면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드러난 현상의 이면을 살펴 보면 문제점도 많았다. 모든 면에서 불리한 여건인 동네슈퍼가 SSM보다 가격이 싼 품목이 적지 않은 데서 보듯, 유통산업을 장악한 대기업들이 오픈프라이스 제도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특히 SSM과 편의점들은 점포의 위치 등과 관계 없이 동일한 제품을 동일한 가격에 판매해 오픈 프라이스 제도 시행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승창 한국유통학회장은 "기업들이 오픈 프라이스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전 방위적인 경쟁은 회피하고 있다"며 "유통 채널 별로 가격 측면에서 눈에 띠는 제품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 경쟁력, 기업형슈퍼>동네슈퍼>편의점=지난 12월 롯데 계열의 편의점인 세븐일레븐과 바이더웨이는 전국 4,400여 전점에서 참이슬, 신라면, 서울우유 등 9개 주요판매 품목의 가격을 상시 할인 판매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야간 영업을 하고 마진율이 높은 편의점에서 상시 할인을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발표 당시 높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조사 결과를 보면 가격인하 조치는 생색내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세븐일레븐에서 파는 처음처럼(360㎖)은 상시 할인 판매로 기존 1,450원에서 1,100원으로 내렸지만, 동네슈퍼에서는 950~1,000원에 팔리는 곳이 부지기수였다. 서울우유(1리터)도 세븐일레븐(2,140원)이 동네슈퍼(2,000~2,100원)보다 비쌌다. 물론 세븐일레븐의 가격은 다른 편의점에 비해 저렴했지만, 오픈프라이스의 취지는 편의점끼리만의 경쟁을 유도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반면 동네 슈퍼의 가격은 전반적으로 SSM보다 높았지만, 일부 품목의 경우는 SSM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보였다. 일례로 강남 신사역 인근 'ㅋ 슈퍼'는 오리온 초코파이(12개입)를 2,200원에 팔아 롯데슈퍼 반포점(2,590원)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압구정점(2,570원)보다 저렴했다. 훼미리마트, GS25에서는 3,200원을 받아 'ㅋ 슈퍼' 대비 45%나 비쌌다. 동네슈퍼는 처음처럼도 SSM과 같은 1,000원에 팔았다. 메로나, 월드콘 등 아이스크림은 가격 격차가 더욱 커 편의점의 반값에 판매했고, SSM에 비해서도 30%이상 저렴했다. 이와 관련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영세한 슈퍼 입장에서는 대형 유통업체와 경쟁하기가 버거운 만큼 공동 구매 등으로 매입단가를 떨어뜨리고 소비자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영업 방식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배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 연합회장은 "중소 슈퍼는 대형 마트나 기업형 슈퍼에 비해 물건을 납품 받을 때부터 불리한 입장에 선다"며 "동네 슈퍼의 가격이 낮다는 것은 달리 보면 그만큼 생존을 위해 발버둥친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지역, 상권 달라도 가격차이 없어=오픈 프라이스 제도는 기본적으로 소매업자의 영업 무게중심을 제조업자(원가)에서 소비자로 옮긴 것이다. 그런 만큼 소매업자가 지역 특성이나 고객 로열티, 쿠폰 등 다양한 할인 혜택 등을 감안해 제품 가격을 달리 매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SSM과 편의점에서의 제품 가격은 매장 위치나 상권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한 마디로 '동일 제품, 동일 가격' 전략이 적용되고 있었다. 편의점 관계자는 "본부에서 내려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성 가격이 있는데, 점주들은 이 가격을 기준으로 시장 상황 등에 맞춰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가격 차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반면 오픈 프라이스 제도의 시행 초기 가장 큰 홍역을 겪었던 동네슈퍼의 경우는 동일 제품의 가격이 지역마다 크게 달랐다. 일례로 초코파이(12개입)의 경우 2,200~3,200원, 처음처럼(360ml)은 950~1,300원, 신라면은 600~700원 등으로 가격 폭이 넓었다. 이 회장은 이와 관련"어떻게 물류 비용이나 상권이 확연히 다른데 같은 제품이라고 같은 가격을 매길 수 있느냐"며"이는 가격 탄력성이 없다는 뜻으로, 모든 점포가 획일적인 본사 정책에 따른다는 얘기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차별화 통해 소비자 편익 높이는 게 관건=전문가들은 오픈 프라이스 제도의 정착을 위해 "소매업체와 제조업체 공히 소비자에 밀착된 영업을 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사실 시장에서는 유통 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낮추려 해도, 제조업체들이 브랜드 파워의 하락을 막기 위해 압력을 넣는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간의 파워 게임이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승화돼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 교수는 "가격에 큰 차이가 없는 시스템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편익이 줄어드는 효과를 낳는다"며 "제조업체들은 소비자가 원한다면 용량을 차별화해서라도 가격을 낮출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소매업체들도 소비자 밀착형 영업으로 고객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자나 라면 등 식품들은 고가인 화장품이나 가전제품과 달라 오픈 프라이스 효과가 금새 나타나기 어렵다"며 "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도 "오픈 프라이스의 효과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그렇다고 정부가 당장 나서기보다는 과자나 아이스크림 등의 수요가 많은 올 봄, 여름까지 시장 반응을 지켜본 뒤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소매점 대부분 적극 참여 불구 '반값 할인 행사' 등은 여전

"값은 다 외우고 있으니까 그냥 저한테 물어보세요." 강남 신사역 인근의 A 편의점. 매대에 가격 표시가 전혀 돼 있지 않은 것에 대한 기자의 지적에 점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던진 말이다. 유명 유통 대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의 가맹 점포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오픈프라이제도의 핵심인 '판매가 표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왜 표시를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 점주는 "수시로 가격이 바뀌는데 그때 마다 새롭게 써 놓기 귀찮아서 붙여놓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오픈프라이스 시행 6개월째의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본지 기자들이 찾은 소매 점포들은 전반적으로 제도 참여에 적극적이었지만 이처럼 아직 적용이 잘 되지 않은 곳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제도위반인 '빙과류 할인판매' 광고문구를 사용하는 점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시행 초기보다 개선은 됐지만 아직 가격 표시가 미흡한 사례도 많았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B슈퍼에서는 오픈프라이스 제도 시행 후 자취를 감춘 '반값 할인' 행사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1,000원 미만인 제품은 40%, 1,000원 이상인 제품은 60%를 할인해 팔고 있던 것. 인근 편의점에서 700원에 파는 메로나는 400원, 1,500원 하는 월드콘은 600원에 판매 중이었다. 슈퍼 주인은 "영등포에서 아이스크림이 가장 싼 점포"라며 "다른 제품도 비슷해 손님들이 자주 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가 조사한 결과 아이스크림 이외에 상품들은 다른 유통채널보다 비싸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이스크림은 이른바 '미끼상품'이었던 것. 이 점포의 신라면은 인근 SSM과 편의점보다 100~150원가량 비쌌고, 카스(330㎖), 왕뚜껑 등 타 제품들은 소폭 많거나 같았다. 결국 동네슈퍼도 대형마트처럼 로스리더 상품으로 손님을 유인하는 판매방식을 벤치마킹하고 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마일리지 카드 같은 고객 서비스 등으로 고객을 이끌 수 있는 SSM이나 편의점과 달리 동네슈퍼가 내세울 수 있는 전략은 오직 저렴한 가격 뿐"이라며 "경쟁에서 밀리다 보니 쓰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할인판매 푯말을 내걸 수밖에 없는게 업주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제도를 뒷받침할 만 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점주의 '기억'에 의존해 물건값을 매기는 영세슈퍼마켓에서는 소비자가 가격을 믿기 힘들다"며 "정확한 가격 표시뿐 아니라 포스(POS) 시스템 도입으로 고객이 결제시 제품 가격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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