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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가구의 가계부(家計簿)가 소득별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고소득층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임금으로 돌려받으면서 소득이 급격히 는 것과 대조적으로 저소득층은 20여년째 벌이가 사실상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최근 들어서는 고소득층마저 지갑을 닫으면서 '가계소비→내수성장→세수 증가→소득재분배'로 이어지는 국민경제 선순환 모형마저 위기에 봉착한 모습이다.
◇소득 제자리 맴도는 저소득층…씀씀이도 줄인다=15일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1990년부터 2013년까지 가계동향조사를 시계열로 분석한 결과 2인 이상 도시 가구 1분위(최저소득층)와 10분위(최고소득층)의 근로소득 격차(명목 기준)가 107만3,000원에서 637만9,000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소득 격차도 176만9,000원에서 846만3,000원으로 확대됐다.
가계동향조사는 1만가구의 샘플을 대상으로 분기별로 가계의 소득 변화를 조사하는 통계수치다.
소득 격차가 이처럼 벌어진 가장 큰 원인은 고소득층과 비교해서 저소득층의 소득이 거의 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예를 들어 1990년 월평균 근로소득이 15만9,000원이었던 1분위 가구는 2013년에도 29만7,000원을 벌어 근로소득 증가율이 86.4%에 불과했다. 그나마 2분위에서 178.4%(33만2,000원→92만4,000원) 늘어나기는 했지만 같은 기간 441~476%가 늘어난 8~10분위 가구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가계동향조사보다 소득 격차가 더 벌어져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발표한 연구논문 '한국의 개인소득 분포: 소득세 자료에 의한 접근'에서 개인소득자의 중위소득이 평균소득(2,046만원)의 52.5%에 불과한 1,074만원이라고 분석했다. 중위소득은 개인소득자를 일렬로 세웠을 때 중간에 위치한 사람의 소득을 말한다. 평균소득보다 중위소득이 훨씬 낮다는 것은 그만큼 소득이 상위계층에 쏠려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논문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연 소득이 1,000만원 미만인 개인소득자가 전체(3,122만명) 중 48.4%에 달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가계동향 조사로 측정한 지니계수는 소득 격차의 폭이나 상승 속도 이런 부분이 과소평가돼 있다"며 "현실적으로 보면 이 격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벌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많이 벌어도 지갑을 더 열지 않는다=저소득층의 임금소득이 늘지 않는 것도 걱정스럽지만 소득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고소득층이 소비를 줄이는 것도 국민경제에 적지 않은 문제다. 가계가 소비를 통해 내수를 키워야 기업이 성장한다. 그래야 기업의 임금이 올라가고 또 나라가 거둬들이는 세금도 늘어 전사회적으로 재분배 효과가 극대화된다. 재분배의 출발점인 가계소비가 줄어들면 다시 저소득층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낙수효과가 약화된다.
실제로 10분위 소비지출을 가처분소득으로 나눈 평균소비성향을 보면 소득이 높을수록 지출을 줄여가고 있는 모습이다. 최고소득층인 10분위의 경우 1990년 70%에 달했던 평균소비성향이 지난해에는 58.6%로 쪼그라들었다. 1990년 가처분소득의 74.5%를 소비했던 9분위는 65.2%로, 8분위도 같은 기간 73.5%에서 70.2%로 각각 줄었다.
고소득층이 소비를 줄이고 있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과거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던 가정이 붕괴하면서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데다 공적연금 등의 소득보전 비중이 낮은 탓에 장년층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경향이 강해졌다. 또 집값이 제자리를 맴돌면서 이를 상쇄할 만한 자산효과도 극히 위축된 상태다.
권규호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전체적으로 가계의 소득의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는데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탓에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계층도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경제가 위기 상황인 만큼 내수를 살려야 하는 단기적 해법을 내놓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