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공계 대학은 우수한 과학기술인력, 즉 브레인웨어(brainware)의 산실이다. 사회발전에 필요한 연구와 함께 학생들을 보다 잘 가르치는데 주력한다. 연구와 교육은 대학이 동시에 추구해야 할 목표로 본다. 그래서 거의 모든 대학에서 교수를 평가할 때 교육과 연구의 비중을 50% 대 50%로 똑같이 반영한다. 물론 강의 또는 연구 전담 교수도 있지만 그 비중은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교수들은 모두 연구와 교육을 병행한다.
미국 이공계 대학은 기업 및 정부를 고객(Client)이라고 부른다. 교육과 연구 가운데 어느 것 하나를 소홀히 할 경우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 학교가 배출하는 학생, 학교가 내놓는 연구성과에 대한 수요자는 바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은 제품 또는 서비스로 연결될 수 있는 연구에 주력하는 동시에 학생들이 이런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문제해결능력을 함양하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미국 공대교육은 사회 및 산업 변화를 수용하고 이끌 수 있도록 다양성과 탄력성을 추구한다. 대표적인 예가 컴퓨터공학을 별도의 단과대학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조지아텍, 카네기 멜론 등 일부 공대는 컴퓨터공학의 중요성이 높아지자 아예 컴퓨터 공학부를 단과대학으로 독립시켜 운영중이다.
◇대학의 연구는 지역의 경제적 번영에 초점=미국 이공계 대학은 연구를 통해 지역사회 나아가 미국의 경제적 번영 및 사회 현안을 해결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는다. 스탠포드나 UC 버클리 공대의 경우 실리콘 밸리의 번영을 가져온 밑거름 역할을 했다.
이는 스탠포드나 UC버클리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미국 남동부 조지아주의 경우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때문에 흔히 주력 산업이 땅콩을 비롯한 농산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지아는 농업 및 물류산업뿐 아니라 IT산업 등 제조업을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삼고 있다. 조지아의 제조업이 쑥쑥 커가는 데는 조지아텍의 공헌도가 절대적으로 높다.
조지아텍은 연구를 통해 개발된 기술을 민간기업에 이전하는 것은 물론 기업의 창업 및 지속적인 성장까지 지원한다. 마치 조지아텍을 중심으로 산업이 형성되는 느낌마저 준다. 조지아텍은 이를 위해 다양한 연구소를 운영중이다. 기업에 첨단 기술을 제공해 조지아의 경제성장을 돕기 위한 `경제개발연구소`, 기술집약형 기업의 창업 및 성장을 지원하는 `첨단기술개발센터(ATDC)`, 연구성과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벤처랩`등은 모두 연구결과를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로 구체화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ATDC를 통해 창업한 기업은 이미 100개가 넘는다. 이미 일부 기업은 증시에 상장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래서 ATDC는 미국 최고의 비영리 창업 인큐베이터로 꼽힐 정도다. 조지아텍은 개발된 기술을 조지아주 소재 기업에 판매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종합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게 교육 목표=미국 이공계 대학의 교육 목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종합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래서 학부과정에서는 수학 등 기초과학에 높은 비중을 두고, 대학원 과정에서는 연구 노하우를 키워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제임스 플러머 스탠포드 공대학장은 “기초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연구인력이나 엔지니어로서 새로운 지식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내고, 새로운 정보를 토대로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없다”면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이공계 대학의 졸업이수학점은 대략 100~120학점. 이 가운데 수학 등 기초과학은 40~45학점에 달한다. 특히 컴퓨터공학의 경우 수학 이수학점만 무려 27학점 이상이다. 국내 이공계 대학의 기초과학 이수학점이 15~22학점인 것과 비교할 때 기초과학에 엄청난 비중을 두는 셈이다. 전체적인 이수학점은 국내대학보다 적지만 교육강도는 훨씬 높다. 학부과정을 마치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평균 4.5~5년에 달한다. 민견 KOTRA 아틀란타 무역관장은 “조지아텍의 경우 학부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는 학생의 비중이 24%에 불과할 정도”라고 전했다.
◇복합전공과 평생 교육이 대세=미국 이공계 대학의 경우 대학원 과정에서는 깊이 있는 전공교육과 연구에 치중하는 반면 학부과정에서는 전공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전공을 선택하는 시기도 2학년 말이다. 2년간 전공에 매달린다고 해도 깊은 수준의 전공지식을 함양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 대신 수학 등 기초과학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에 치중하면서 기계공학, 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전공과목을 선택해 공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학이 복합전공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예를 들어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면 컴퓨터공학, 생물학 등 다양한 전공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아예 학생 개개인이 특정 전공과목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전공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는 `개인전공(Individually Designed Major)`제도를 운영한다.
또한 학부생을 연구에 참여시키는 것도 큰 특징이다. 날 데이비슨 조지아텍 부학장은 “학부생을 연구에 참여시킴으로써 학문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이런 연구과정을 통해 새로운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거의 모든 대학이 대학졸업자 등을 대상으로 온라인 교육을 제공한다. 온라인으로 직장인들에게 새로운 공학 이론을 가르치면서 산ㆍ학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터뷰] 날 데이비슨 조지아텍 부회장
"학과간 복합프로그램 실용공학 토대"
“과학기술인력이나 엔지니어는 현대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공대교육도 학생들이 학습방법을 스스로 익힐 수 있도록(learn how to learn) 유도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날 데이비슨 조지아텍 부학장은 “공대 졸업자들이 기초 실력만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특정 산업현장에 필요한 지식은 취업 후 1년정도면 충분히 체득할 수 있다”면서 “대학에서는 평생 학습에 필요한 능력과 역량을 키워주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비슨 부학장은 “조지아텍의 경우 학부과정에서는 폭 넓은 교육에 치중하고, 대학원과정에서도 깊이 있는 공학연구에 초점을 맞추지만 특정 산업에 필요한 지식은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데이비슨 부학장은 조지아텍의 강점으로 실용적인 공학교육을 꼽았다. 그는 ““보다 실용성이 높은 교육을 위해 학과간의 복합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관리자를 따로 두고 있다”면서 “그의 역할은 교수들이 특정 복합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하면 즉시 요건에 맞는 교수들을 묶어 프로그램을 조속히 도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컴퓨터공학 분야를 별도의 단과대학으로 독립시킨 것도 이런 취지”라며 “현재 컴퓨터 공학에 대한 과학기술 연구나 공학교육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에 이 분야를 키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대, 나아가 대학이 발전하려면 우수한 교수진 확보가 최고의 대책”이라며 “조지아텍이 주립대로서 미국 최고의 공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먼저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하는데 노력하자 우수한 학생들이 몰렸고 이것이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데이비슨 부학장은 “조지아텍은 주립대로서 조지아주의 현안 해결 및 경제적 번영에 기여할 의무와 책임을 갖고 있다”면서 “그래서 다양한 연구활동을 통해 지역 소재 기업을 지원하되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기업이 원하는 기술적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이라고 자랑했다.
[인터뷰] 제임스 플러머 스탠포드 공대학장
"팀워크발휘 역량 키워주는 것도 중요"
“지난 25년동안 통신장비 등 정보기술(IT)산업이 경제발전을 주도했다면 앞으로 25년동안은 생명과학 분야가 새로운 성장주도산업으로 부상할 것입니다. 스탠포드는 IT분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탁월한 연구와 교육을 통해 생명과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것입니다”
제임스 플러머 스탠포드 공대학장은 “스탠포드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 교육 및 연구를 통해 기술혁신 및 교육에 관한 한 선두주자 자리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플러머 학장은 “산업사회에 숱한 직업이 있는데 여기에 필요한 실무지식을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학부과정에서는 수학 등 기초과학에 대한 실력을 충분히 닦고, 대학원 과정에서는 기초과학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연구수행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에서 구체적인 제품을 설계하는데 필요한 실무지식을 가르칠 수는 있지만 제품만을 안다고 해서 훌륭한 설계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잠재적 시장규모, 소비자들의 선호 등을 파악해야 히트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현대사회의 특성을 감안할 때 대학에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현안을 풀어 나가거나 우수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팀워크(teamwork)를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플러머 학장은 “스탠포드 공대의 경우 기계공학과 등 5개 학과는 미국공학기술교육인증원(ABET) 인증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나 이는 이들 학과가 전통적인 산업분야의 전문 엔지니어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다른 학과의 경우 이런 프로그램보다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폭 넓은 지식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굳이 ABET 인증 프로그램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과간의 복합 프로그램이 필수적이고 대세”라고 강조했다.
<조지아ㆍ캘리포니아(미국)=정문재기자 timoth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