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문화인프라 2000/공연] '문화상품' 세계무대서도 통한다

물론 이러한 경제논리 일변도의 공연예술계의 분위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많다. 공연을 무대에 올리면서 수익성만을 생각하다 보면 작품은 자연히 감각적이고 자극적으로 흐를수 밖에 없고, 결국 공연예술 무대 전체가 싸구려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하지만 공연예술을 경제논리로 바라보는 것을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 이후 유지되던 「지식(문화)/힘」 패러다임이 무너져 가고 그 대신 「지식(문화)/돈」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대통령도 작년 10월20일 「문화의 날」 행사에서 『문화창조력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핵심역량이고 앞으로는 이 역량에 따라 국가적 위상이 결정될 것』이라며 『21세기의 기간산업이 될 문화산업의 육성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문화=돈」이라는 등식이 정부의 문화정책으로 가닥이 잡혔음을 읽을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문화를 하나의 산업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마당에 지금의 공연예술계가 「산업」으로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공연예술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우선 공연예술계에서 「귀감」으로 삼을 만한 사례는 뮤지컬 퍼포먼스 「난타」의 성공이다. 「난타」는 외국에 한국문화를 알리면서 외화도 벌어들이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성과를 올렸다. 「난타」는 음식점 주방을 배경으로 4명의 배우들이 대사없이 각종 주방기구 두드려대는 비언어(넌버벌·NONVERBAL) 연극. 이 작품은 97년 10월 국내에서 첫 무대를 가진 뒤 17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매진사태를 기록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또 올해는 1월6~16일 일본 도쿄, 1월19~23일 오사카공연, 7~8월 중국 본토, 가을엔 유럽 순회공연에 나선다. 10월에는 미국의 오프브로드웨이에 진출한다. 이 공연은 지금까지 100만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난타」 를 제작한 송승환씨(PMC환퍼포먼스 대표)는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넌버벌 연극 「스텀프」가 6년동안 2,200만달러를 벌어들였는데 우리도 오프브로드웨이에 진출하면 그 정도는 문제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송씨는 오프브로드웨이에는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상업화된 동양권 공연이 없기 때문에 「난타」 세계무대에 승부를 걸어볼만 하다고 말한다. 「난타」의 성공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와 엔터테인먼트(오락성)의 결합이 바로 그 비결. 예술성과 재미가 결합된 무대에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이 힘을 더해「난타」를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성장할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난타」의 성공에서 얻을수 있는 교훈은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의 개발」만 개발한다면 우리 공연예술도 세계속에서 얼마든지 인정받을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다.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는 97년 8월15일 세계공연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후 「명성황후」는 공연예술의 산업화를 말할 때마다 거론되는 단골 메뉴가 됐다. 하지만 이 공연은 경제상의 손익(損益)을 따져보면 아쉬움이 크다. 이 작품은 두 해에 걸친 40일간의 미국공연에서 2백만달러의 적자를 냄으로써 「문화상품」으로서는 한계를 드러냈다. 「명성황후」는 레퍼토리로서의 성공을 밑거름으로 수익성을 보완해야 하는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한편 극단 산울림의 고정 레퍼토리 「고도를 기다리며」가 지난해 11월 일본 첫 나들이에서 커다란 갈채를 받은 것도 성과로 꼽을만 하다. 매회 500석 객석의 80% 가까이 팔리자 일본측 관계자들도 매우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고도」는 최근 일본 아사히신문이 뽑은 「99년 최고작품」에 선정되는 쾌거도 이뤄냈다. 하지만 공연예술은 음악·무용·연극 전분야에 걸쳐 대부분의 작품이 해외진출은 엄두도 못내고 있을뿐만 아니라, 공연에 투입한 원금도 못건지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예술을 논하는데 왜 자꾸 천박하게 돈 이야기냐」는 핀잔을 들을수도 있겠지만, 좋은 공연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채산성을 따지지 않을수 없다. 한 공연의 결과가 흑자냐 적자냐가 곧바로 다음 공연의 지속 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공연예술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연예술인들만의 힘으로는 안된다. 우선 공연을 보려는 「소비시장」이 형성돼야 하고, 다음으로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작년 9월18일 창립한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는 새로운 「문화개혁」을 주창했다. 문화연대는 문화개혁이 예술운동이나 지식인 운동의 범위를 넘어 예술가·지식인·사회단체·일반시민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여 시민운동과 문화운동이 결합된 「문화운동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연예술을 하나의 시장으로 본다면 시민은 「소비자」인 셈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공연예술의 소비자인 시민이 「소비자 주권」의식을 갖고 보다 질 높은 「소비」를 위해 나서야 한다는 문화연대의 주장은 공연예술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 할수 있다. 공연예술 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가 해야할 몫도 많다. 선진국의 정부는 공연예술을 공공재적인 산업으로 인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또 각종 세제지원을 통해 기업들로 하여금 공연예술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제공하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기도 한다. 이제 우리 정부도 공연예술을 더 이상 시장경제에만 맡기지 말고 좋은 작품 하나가 우리의 문화수준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무역거래를 갖는 외국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수 있는 「문화인프라」라는 인식을 갖고 문화예술 육성정책에 나서야 한다. 문성진기자HNSJ@SED.CO.KR

관련기사



문성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