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정치가 변해야 경제가 산다] <4> 나쁜 대기업 착한 중소기업?

흑백논리·포퓰리즘 정책으로 현실 왜곡… 中企 경쟁력 떨어뜨려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하면서 대기업의 반발은 물론 중소기업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정운찬 동반위원장이 지난해 11월4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동반성장 가이드라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경제DB



1·2·3차 협력업체로 이어지는 하청업체 쥐어짜기 고질적 병폐
대기업만 때린다고 해결 안돼

대-중기간 영업이익률 차이는 하도급관계 탓 아닌 '통계 착시'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정착 등 기존 제도부터 제대로 운영을


정치권이 최근 균형감각과 구조적 인식 없이 '못된 대기업, 약한 중소기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휩쓸리고 있다. 새누리당ㆍ민주통합당 등 여야 할 것 없이 하도급 부당 단가 인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대기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진출시 형사처벌 등 각종 중소기업 보호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흑백논리에서 출발한 중소기업 정책은 실제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을 왜곡, 과장할 뿐만 아니라 총선ㆍ대선 등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치권의 표 몰이가 오히려 산업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해 궁극적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만 해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납품가 후려치기, 1ㆍ2ㆍ3차 협력업체가 더 문제=원청기업의 하청업체 쥐어짜기는 국내 산업계가 해결해야 할 고질적 병폐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대기업만 옥죈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지난 15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하도급거래 실태조사 결과 법 위반 혐의업체 비율은 최상위업체 41.3%, 1차 협력사 46.5%, 2차 협력사 53.2%, 3차 협력사 55.5%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 결과는 하도급 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대기업뿐 아니라 1차 이하 협력업체(중소기업) 사이에서도 심각하며 '하도급 사슬'에서 나오는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1~2개 업체에 거래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기업구조는 하도급 문제를 심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해 수급사업자의 83.4%가 상위 협력업체 단 한 곳과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매출액의 60% 이상을 1개 업체에 의존하는 비율도 95.2%에 달했다. 글로벌 시장 진출 등 스스로 판로를 개척하는 협력업체들의 노력이 크게 미흡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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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의 착시' 주의해야=중소기업의 낮은 평균 영업이익률 역시 단순한 하도급 관계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중소 제조업체 중 다른 기업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의 비율은 43.2%로 전체의 절반에 못 미쳤다.

한국경제연구원는 보고서를 통해 대기업-중소기업 간 영업이익률의 차이는 일종의 '통계의 착시' 탓이라고 분석했다. 1995~2009년 중 부실기업의 비중은 21.8%로 이 가운데 중소기업의 비중이 88.6%라는 것이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포진한 대기업 집단과 한계기업이 많은 중소업계의 영업이익이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특히 정상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평균 6.0%로 대기업 전체(6.3%) 영업이익률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영업이익률이 -5.1%에 불과한 부실 중소기업을 합치면 중소기업 전체 평균 이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나친 보호는 '피터팬 증후군' 키워=중기적합업종, 중소기업제품 정부구매 등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진입장벽은 지나치면 독(毒)이 된다. 중소기업들이 경쟁이 제한된 시장 안에서 서로 '땅 따먹기'에 집중하며 안주한 채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이다.

실제 2010년 국정조사 결과 방위사업청에 식품을 납품하는 업체 201곳 중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을 받지 않는 등 자격미달인 업체는 전체 66.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군납업체는 개구리 김치 등 경쟁의 무풍지대에서 온갖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팀스 사태 역시 피터팬 증후군의 결과물이다. 2010년 가구업체 퍼시스는 조달시장에 머무르기 위해 인적분할을 통한 자회사 팀스를 설립했다. 한 중소가구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3ㆍ4분기까지 2,033억원의 매출액을 거둔 퍼시스의 수출 비중은 10%에도 못 미치는 176억원"이라며 "퍼시스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크기보다는 경쟁이 없는 조달시장에 머무르는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기존 제도 내실 운영이 먼저=전문가들은 중소기업들이 장기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등 기존 제도가 현장에 제대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정책당국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실 중소기업들이 많으면 (정상기업에 가야 할) 자본ㆍ인력을 흡수해 정상기업이 크지 못하는 '발목잡기' 현상이 나타난다"며 "은행과 보증기관에서 신용평가를 강화해 기업인수합병(M&A), 사모투자전문회사(PEF) 등을 통한 민간차원의 구조조정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성장단계에 맞춘 중소기업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기업의 영세화를 막기 위해 고용ㆍ투자 등 규모를 키운 기업에 세액공제, 연구개발(R&D) 지원 등 성장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 그는 "기존 제도도 운영만 잘하면 도움이 될 제도들이 꽤 있지만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지 않다"며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는 납품단가 조정의 신청권은 조합에 있고 협의권은 해당 기업에 있어 기업들이 제대로 신청을 못하는데 이 부분을 개선하고 상급업체의 보복이 있을 경우 법 적용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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