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12월 31일]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

최근 “당신 펀드는 고등어 펀드냐, 갈치 펀드냐 아니면 회 펀드냐”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한다. 고등어는 반토막 난 펀드를, 갈치는 4분의1 토막 난 것을 말한다. 회는 난도질 당해 형체(원금)도 없는 펀드를 풍자한 것이다. 세계 각국이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국내외 금융시장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우지수는 8,500선에, 엔ㆍ달러 환율은 달러당 90엔 초반에 머물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도 지수가 바닥에서 소폭 반등했지만 기대에는 못 미친다. 금융시장도 문제지만 내년 실물경기는 더 심각하다. 초일류 기업인 도요타의 실적악화는 세계의 불황을 실감하게 한다. 정부 관계자의 잇따른 말 바꾸기와 오락가락하는 정책도 불안을 불러 일으킨다. 위기가 진정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면서 내년 주식시장 전망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는 지수가 500밑으로 추락한다고 하고 낙관적인 국내 증권사는 1,400선을 넘을 것이라 장담한다. 개인 투자자들은 과연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 만약 필자에게 자산관리 방향을 물어본다면 ‘현금을 보유하라’고 권하고 싶다. 경기전망이 불투명할 때는 위험자산을 처분하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다. 현재는 파생시장 트레이더도 외환위기를 능가하는 시장 변동성 때문에 위험관리에 주력한다. 주식과 펀드를 과다 보유한 가계만이 ‘좀 있으면 나아지겠지’라는 심정으로 버티는 형편이다. IMF 외환위기 때 신문사를 다녔던 필자는 선배 증권부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 선배는 “주식(株式)의 의미를 아냐”고 물었다. 일본식 한자조어인 주식에서 주는 나무 목(木)변에 붉을 주(朱)가 붙어 있다. ‘붉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가 주식이라는 게 그 선배의 해석이었다. 우스갯소리겠지만 어찌 보면 주식시장의 생리가 그 해석 안에 담겨 있다. 여태 전문가의 말을 쫓다가 큰 손해를 본 후에도 ‘위기는 기회’라는 생각을 가진 투자자가 많다. 앞으로 숱한 기회가 오는 것은 맞다. 그러나 기회는 어디까지나 현금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된다. 위험자산을 처분하고 최대한 아껴서 현금을 확보하는 게 우둔한 것 같지만 가장 현명한 투자 방법이다.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가 쓰러지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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