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협방식ㆍ형태 전환
고 정몽헌 현대아산회장은 2년 전 대북 경협사업이 `퍼주기식` 경협이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지자 간단하게 질문을 물리쳤다. “나도 장사꾼이다. 1년 뒤에 투자금을 회수하느냐, 10년 뒤에 회수하느냐의 문제”라는 게 정 회장의 대답. 현대의 대북사업이 민족화합과 교류를 촉진하는 평화사업인 동시에 기업의 장기비전을 담은 수익사업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정 회장은 `모든 것을 떠 안고` 비운의 생을 마감했고 4,5000억원의 자본을 모두 까먹은 현대아산의 진로는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불투명해 보인다.
과연 무엇이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소떼 방북을 단초로 한 현대의 경협이 남북화해와 교류의 물꼬를 트고 통일의 초석을 다졌다는 역사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불행으로 이어진 사태가 재발될 소지는 없는가. 전문가들은 `제2의 불행과 실패`를 막기 위해서는 경협 방식과 형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모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지원성ㆍ시혜성 경협에서 시장형ㆍ수익형 경협으로 전환하고 정부와 민간의 분명한 역할 분담이 시급하다. 대북경협은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고 정회장의 형으로 대북사업을 승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정몽구 현대ㆍ기아자동차회장 마자도 현대아산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국내외 투자자의 동요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경제협력 연구실장은 “고 정회장의 불행은 대규모 남북경협이 특정개인과 민간 기업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며 “지원형 경협이 시장형 경협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새삼 부각시켰다”고 평가했다. 통신과 철도 등 현대가 확보한 일부 독점사업은 기업의 영역을 넘어섰고, 관광대가를 9억2,400만 달러로 일괄 계약한 것은 기업원리와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의 대북 진출 창구를 맡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은 대북 투자의 첫번째 수칙으로 투자규모의 적정성을 꼽고 있다. 북한을 진출할 때는 만약 문제가 생겨도 회사경영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투자할 것을 조언하고 있는 것. 북한 내수시장까지 뚫어 성공 경협으로 평가받는 IMRI 유완영회장은 “국내기업이 감당할 정도만 북한에 투자하고 자본을 꾸준히 축적하면서 장기적으로 인맥과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시장형 경협은 경협에 대한 북한의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없는 한 녹록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남북한 교역액은 지난해 6억4,170억달러로 남한이 중국에 이어 북한의 두번째 교역상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뺀 상업적 거래액은 전체 교역액의 절반을 넘지 못한다. 시장성만 따지자면 노동시장 환경이 좋은데다 내수시장까지 겸비한 중국이 더 낫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따라서 경협이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는 평화사업이자 장기적으로는 통일비용이라는 공공 사업임을 감안할 때 경협에 대한 정부의 참여 내지 지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현재까지의 경협은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불분명했다”며 “민간은 수익성 확보라는 기업 본연의 원리에 충실해야 하고 정부는 제도 개선 외에도 공적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한 지역에 도로와 통신ㆍ전력 등의 사회간접시설 구축이 김 교수가 꼽는 정부의 역할. 긴장완화 효과 외에도 남측기업의 투자환경을 개선시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국익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공적 인프라 지원에는 국민적 합의가 바탕이 돼야 하고 투명성이 확보돼야 함은 물론이다. 오승렬 통일 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북경협이 평화사업이라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도록 북한과의 협상력을 높이는 게 정부의 몫이다”고 말했다.
<권구찬기자 chan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