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축산업체인 하림이 소액주주들과의 표 대결에서 승리하며 팬오션(028670) 인수를 확정했다. 하림은 이번 인수를 통해 글로벌 곡물 유통기업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12일 오전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개최한 팬오션 관계인 집회에서 주식 감자안(1.25대1)을 포함한 변경 회생계획안이 채권단 87%, 주주 61.6%의 동의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하림 인수를 전제로 마련된 회생안이 통과됨에 따라 하림의 팬오션 인수가 사실상 확정됐다.
애초 소액주주들의 감자안 반발로 회생안 통과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이날 집회에서 주주 2분의1 이상(가결요건)이 동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은행과 우정사업본부 등이 참여한 채권단도 3분의2 이상 동의하며 가결요건을 충족했다.
하림은 지난해 12월 팬오션 매각 입찰에 참여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고 지난 9일 1조79억5,000만원의 인수대금을 완납했다.
하림은 오는 16일 팬오션 인수를 위한 인수단을 구성, 파견해 경영권 인수 준비작업에 들어간다. 팬오션 주식은 17일 매매거래가 정지된 뒤 신주발행, 유상증자 및 감자, 신주상장 및 거래 등의 절차를 차례로 밟게 된다. 주주총회와 이사진 구성 등을 거쳐 법원의 승인이 떨어지면 7월 말 이전에 모든 인수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림은 팬오션 인수로 현재 4조3,000억원 규모인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어 내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집단에 편입된다.
병아리 10마리를 닭고기 업체 하림으로, 다시 대형 해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키운 김홍국(사진) 하림그룹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11세 때 외할머니에게 선물 받은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고3 때 닭 4,000여마리의 양계업체를 꾸렸고 1986년 하림식품을 설립했다. 이후 2001년 천하제일사료를 인수하고 NS홈쇼핑을 설립하는 등 사업 분야를 확대해 하림그룹을 만들었다.
김 회장이 꿈꾸는 하림의 롤모델은 글로벌 사료업체 '카길'이다. 카길은 연매출 140조원에 이르는 다국적 농업회사로 600여척의 선박을 운용해 세계 시장을 누비며 곡물 구입과 가공·유통 등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림이 팬오션 인수에 사활을 걸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직접 운송까지 맡아 곡물 유통비용을 아끼고 해운 운임이 요동칠 때도 안정적으로 가격을 유지해 곡물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하림은 팬오션의 운송능력을 기반 삼아 곡물유통 사업 범위를 동북아 시장 전체로 넓힌다는 계획도 세웠다. 국가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곡물 메이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김 회장의 오랜 철학도 이번 팬오션 인수의 밑바탕이 됐다.
하림 관계자는 "회생절차를 잘 매듭짓고 경영을 정상화시켜 팬오션의 과거 명성과 영광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최근 계속되고 있는 해운업 불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곡물유통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기업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팬오션도 하림그룹에 편입되면서 고정적 일감을 확보해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팬오션은 현재 78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20여척이 전용선이다. 전용선은 고정적인 일감을 확보해 업황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 팬오션은 매출액의 70%가 전용선에서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팬오션이 하림 곡물운송을 도맡으면서 전용선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면 꾸준한 수익을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