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0주차에 들어선 회사원 A씨는 요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갈수록 입덧이 심해지면서 피로도가 급격히 높아졌지만 눈치가 보여 쉴 수가 없기 때문. 임신 기간 중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를 이용한 직원도 없을뿐더러 신청 양식도 없는 상황에서 선뜻 신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공문을 보내오면 좀 나을까 싶어 고용노동부에 근로시간 단축제를 시행하라는 공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다. 법적 제도가 마련됐으니 회사가 안 지키지 고발하라는 것. 결국 A씨는 쉬는 시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지난달 25일부터 정부에서 시행 중인 임신 기간 근로시간 단축제가 기업과 관계 당국의 무관심 속에 허울 뿐인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임신기간 근로단축제란 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인 여성 근로자가 근로시간을 하루 2시간 단축할 수 있는 제도. 일반적으로 임산부들은 임신 12주 이내에 입덧과 신체적 피로로 유산할 가능성이 높고 36주 이후에는 만삭이 돼 활동하기 어렵기에 해당 기간 경력 단절을 없애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한달 여가 지난 지금 실제로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다는 임신 여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회사에서는 눈치가 보여 말조차 꺼내기 힘들고, 정부에 도움을 요청해도 고발하라는 말 외엔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신 초기 여성은 지친 몸을 이끌고 남들과 똑같은 업무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두 번이나 유산한 공무원 B씨(35)는 최근 임신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업무가 끝나면 녹초가 된 몸을 끌고 집으로 퇴근해 잠만 자고 다음날 다시 출근하길 반복했다. B씨는 “직장에서 맡은 업무가 있는데, 2시간 먼저 퇴근하면 내 일은 누가 대신하느냐. 고스란히 주변 동료들에게 업무를 전가해 피해를 볼 것”이라며 “대체 인력이 보장되는 상황도 아니고 지금 하는 업무가 일반 대체 인력이 와서 바로 할 수 있는 단순 업무도 아니고 눈치 보여서 쓰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회사원 C씨(26)도 “(정부에서는)근로시간단축 신청을 거부한 사업주를 고발하면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지만 누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사업주를 고발하겠는가”라며 “제도 시행 전에 회사도 충분히 인지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공문이나 포스터라도 배부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가 우선된다면 한결 쓰기 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임산부 근로시간 단축제는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2016년 3월 25일부터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시행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이 인력 수급 부분에서 취약한 영세·중소기업인 사회적 현실에서 ‘사업주가 안 지키면 고발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으로 제도 정착을 이룰 수 있을 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