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국가별로 세계화의 내용은 달라질 것”

■ 유럽 자본주의 해부 김진방외 지음/ 풀빛 펴냄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라면 그것은 아마도 미국식 자본주의일 것이다. 해방이후 지속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서 자본주의를 추구해 왔고 실제로 미국이 주는 원조와 차관,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97년 IMF 외환위기도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금융기구에 대한 의존성을 더욱 심화시켜 오늘날 미국 자본주의를 빼 놓고는 한국의 자본주의를 논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국가경제의 운용은 물론 기업 경영에 대한 중대한 변화의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미국식 경영이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자에 대한 자유로운 해고와 자본의 끊임없는 가치파괴와 재생산을 보장하는 체제라면 노 대통령의 경제운용 기조는 해고와 자본 가치의 파괴에 따른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기업 경영에 대한 다수 이해 관계자의 참여, 이와 함께 전반적인 사회보장 제도의 확충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의 경제 운용은 미국보다는 차라리 유럽식 방식에 가까운 형태로 변화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학계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때 일본식 학풍의 영향을 받은 경제학자들이 지난 60년대이후 대거 축출(?)된 이래 한국의 경제학계는 미국식 경제학과 이를 공부해 온 미국 유학파들이 장악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유럽식 학풍의 영향을 받은 일부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해도 학계의 큰 흐름을 바꾸기는 역부족이었다. 미국식 경제학 대신에 유럽식 경제학에 높은 관심을 보여 온 김진방(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전창환(한신대 국제경제학과 부교수), 이상호(덕성여대 강사), 조영철(국회사무처 예산분석관), 홍영기(금융감독원 조사역), 송원근(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벤자민 꼬리아(파리 13대학 교수) 등 소장파 학자들이 참여한 `유럽 자본주의 해부`는 이런 점에서 매우 시사적인 책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한국 경제에 미국의 자본주의 모델이 이미 상당히 침투한 상황에서 유럽식 모델을 연구한다는 것은 때로 시대착오적인 고집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일단은 조심스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돼 있는 `세계화`란 테제가 한 국가가 채택하는 자본주의 모델에 따라 그 영향이나 진행되는 정도가 사뭇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감히(?)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유럽식 자본주의를 논의하는 것이라고 스스로의 입장을 밝힌다. 전체 3부로 구성돼 있는 이 책은 세계화와 유럽, 독일의 기업지배구조와 금융시스템, 독일과 프랑스의 혁신 시스템 등이 주요 내용이다. 1부에서는 세계화 시대에 유럽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딜레마나 문제를 안게 되었는지 살핀다. 유럽통화동맹의 추진과정과 그것이 유럽의 정치경제질서에 미친 영향이 분석되고, 소위 효율성과 노동자 연대의 바탕이 돼 왔다고 평가되던 독일식 복지제도가 세계화의 풍파 속에서 어떤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지 살펴 본다. 2부에서는 독일의 기업지배구조와 금융시스템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것이 최근에는 어떤 변화를 맞고 있는지 살핀다. 특히 라인형 자본주의라 불리는 독일식 기업 및 금융지배구조의 특징을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미국식 자본시장중심 금융시스템과 구별되는 은행중심 금융시스템이라는 틀 안에서 분석한다. 3부에서는 독일과 프랑스의 국가 혁신시스템의 특징과 세계화에 따른 변화 양상을 추적한다. 장기적인 노사안정과 정부주도의 자금조달체제를 갖춘 독일이나 프랑스의 혁신 시스템은 급진적인 기술혁신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최근 상당한 위협을 받고 있지만 그것이 미국식 혁신시스템으로 일방적으로 수렴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저자들의 진단이다. 한편 이 책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 아래 `글로벌라이제이션과 한국자본주의의 발전 모델의 대안적 전망`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협동과제의 2차년도 성과물로서 지난해 출간된 `미국자본주의 해부`의 연속본에 해당한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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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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