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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는 구명용 튜브 모양의 '라이프 세이버(Life Savers)' 사탕이 걸려있다. 그 옆 벽면에는 무수히 많은 다양한 모양의 화살표들이 출구를 가리킨다. 얼른 빠져나가라는 신호 같다. 이와 함께 맞은편에는 '진'자가 크게 벽을 채웠고 그 옆 벽에는 700번이나 적은 '정성'이 반복된다. 작가듀오 '미나&Sasa'의 작품이다. '진정성'은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해 선정한 '세상을 바꾸는 10대 키워드' 중 하나였고, '라이프 세이버'는 알사탕이 목에 걸려 질식사한 딸을 생각하며 구멍 뚫린 사탕을 만든 개발자가 아들의 투신자살은 막지 못했다는 사연이 전해진다. 작품 앞에서 조금만 시간을 할애한다면 '안전제일'을 외치고도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세월호 참사를 감지할 수 있다.
세종대로 삼성생명빌딩 1층의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고 있는 '스펙트럼 스펙트럼'전은 한국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취지 아래 현대미술의 미덕이 일상에 대한 환기임을 실천 중이다.
정지현 작가는 5m 흑연 덩이 속에 계량기 숫자판을 박아 넣어 설치했다. 계량기의 움직임으로 옆집 사람의 존재를 겨우 파악하는 슬픈 현실을 지적하듯 계기판의 숫자는 대륙별 출생률과 사망률을 가리킨다. 3인조 작가 '길종상가'는 미술전공자들이 생업을 위해 이태원에서 동명의 가게를 꾸리는 이들로, 미술가의 역할을 되묻게 하는 화분·가구·조명·카세트테이프 등의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낡은 물건들과 매끈한 미술관의 부조화 속에서 일상과 예술의 일그러진 공존을 엿보게 한다. 지니서 작가는 4.5m 가죽끈 134줄로 전시장 천장과 기둥을 팽팽하게 묶었다. 건물의 공간성, 재료의 물성, 이들의 관계성을 고찰한 꽤 어려운 작품이지만 해석은 관객의 자유다. 견고한 묶음이 가죽끈을 청동선으로 보이게 할 정도지만 한편으로는 결 좋은 머리카락 묶음이라 여길 수도 있다.
커밍아웃한 작가 오인환의 '경비원과 나'는 밥도 먹고 대화도 나누며 친해진 경비원에게 커플댄스를 제안하려 했던 작품이나 경비원이 3번째 만남에서 더이상 참여할 수 없다며 거부하는 바람에 홀로 춤추는 장면으로 마무리됐다. 시쳇말로 '웃픈' 이 작품이 현실을 꼭 닮았다.
이번 전시는 리움의 격년제 작가발굴전인 '아트스펙트럼'에 선정된 작가 중 7명이 다른 작가 7명을 추천해 총 14팀이 참여했다. 빛 스펙트럼이 7가지 색을 그리듯 14색의 쌍무지개다. 미로처럼 보이는 연작 '친숙한 고통'의 13번째 마지막 작품을 선보인 김범을 비롯해 경현수·슬기와민·이동기·이미혜·이주리·이형구·정수진·홍영인이 참가했다. 10월1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