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38> 우리 안의 강한 혐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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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에 가담하는 아이들 중 상당수는 ‘그냥 싫어서’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사실 누군가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인지과학적 관점에서도 매우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인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3자가 상황을 중재해 보기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반대 근거를 내놓아도,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옹호 논리를 제공할 뿐이라며 일축하기 일쑤입니다. 왕따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몇몇 독한 아이들이 아니라, 조직화된 소수의 혐오 감정을 막지 못하는 다수의 침묵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누군가가 싫다는 여론이 좌중을 지배하게 되고, 그 외의 의견은 좀처럼 거론도 되기 힘든 소재가 되고 맙니다.

이런 행동은 비단 개인을 대상으로만 하지는 않는 듯 합니다. 외국, 특히 이웃나라를 대상으로 한 혐오의 감정도 비슷한 기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일본을 향한 감정은 아무리 이성적으로 다스려보려고 해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일본대사관 주최 국경일 기념 행사가 SNS 상에서 주목받은 적이 있습니다. 실상은 아키히토 일왕의 12월 23일 생일을 사전에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는데요. 이 행사를 저지하기 위해 직접 나선 어느 여성의 행동이 유난히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았습니다. 그녀는 자위대 창립 기념 행사나 일본 왕의 생일 축하연이 왜 서울 한 복판에서 열리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내빈들에게 2시간 동안 욕설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과거 36년 동안 일제가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면, 이해가 갈 법도 하지만 현재 일왕은 89년 즉위한 인물로 그녀가 말하는 ‘전범’이 아닙니다. 우방국의 국가 원수 자격으로 초청받은 내빈들이 그 자리를 고사하는 것이 ‘예의’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겠습니다.


중국에 대한 비하는 우리 생활에서 일상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중국 요리를 시키기 위해 전화를 걸기 전 사람들은 ‘짱깨 부르라’고 말합니다. ‘짱깨’는 원래 ‘장궤’라는 표현에서 발원한 단어입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 정착해 살던 화교들이 성실히 돈을 모아 장롱 속에 돈을 쌓아 두는 모습을 비아냥댄 표현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중국에 사대를 하면서, 또는 그들의 침략을 받으면서 내성을 키워 온 우리 역사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많은 가치를 공유해 나가야 할 이웃 나라의 문화를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여타 국가를 향한 편향된 시선도 비슷한 맥락이겠죠. 인간관계가 그렇듯 국가 간의 관계가 어느 때고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의 본질이 우애와 배려에 입각한 것이라면 장기적으로 더 좋은 사이가 되기 위해 가끔은 감정을 억제하고 상황에 임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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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평론가이자 문학자였던 에드워드 사이드가 왜 인접한 국가의 사람들이 이토록 미워하고 반감을 품어야 하느냐에 대해 재밌는 시각을 내놓았습니다. 다름 아닌 ‘동질성 추구’로 인한 미움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상대방에게 자기와 비슷한 행동 양식을 강요합니다. 왜냐하면 비슷하다는 데서 오는 익숙함, 편안함, 심지어는 타당하다고 느끼는 기제 등이 복합적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자신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상대방을 보면 괜히 억한 심정이 들고, 급기야 그와 적이 되고 맙니다.

한국, 중국, 일본은 다른 나라들이 ‘동북아시아’라고 칭하는, 다소 비슷한 문화적 베이스를 갖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유교 문화권에서 한자로 소통할 수 있고, 권위주의적인 성향의 커뮤니티 문화가 당연시되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사실은 세 국가가 거의 하나의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자기네 나라가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중화제국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계속해서 각 나라 역사를 통합하고 있죠. 그리고 우리나라도 백제나 고구려 시절의 생각을 더듬으며 일본이나 중국의 일부가 상당히 많은 문화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본 역시 ‘임나일본부설’ 또는 ‘대동아공영권’같은 매우 허상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때때로 무섭기까지 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우리 안의 동질성을 갈구하는 마음은 이렇게 상대방을 내 방식대로 점유하고, 관점을 강요하고, 급기야는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는 셈입니다.

서로가 너무 다른 당신이라고 사실을 인정하면 어떨까요. 우리 안의 강한 혐오는 프레임 밖에 있는 일본과 중국에 대한 미움인지도 모릅니다. 차이를 인정하면 적정한 거리가 생깁니다.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 양식들이 공유됩니다. 정 많은 사람들에게는 서먹해 보이는 조치일지 모르겠지만, 상처 주지 않고 상처 받지 않는 방법 중 하나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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