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한 환두대도(環頭大刀·고리자루큰칼)에서‘이사지왕(爾斯智王)’이라는 글자가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일환으로 산하 보존과학부에서 금관총 출토 환두대도를 보존처리 하는 과정에서 명문(銘文)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판독한 결과‘이사지왕’이라는 글자를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글자는 칼 끝 부분을 장식하는 금속 부분에 선으로 그려져 있다. 칼집 하단 앞·뒷면에‘爾斯智王(이사지왕)’과‘十(십)’, 칼집 상단에서는 '爾(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이 보관하는 금관총 출토 다른 환두대도에서도‘爾’,‘八(팔)’,‘十(십)’이라는 글자가 확인됐다. 이 두 자루 칼에 새겨진 글자를 토대로 박물관 측은‘爾(이)’자가‘爾斯智王(이사지왕)’명문의 일부라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爾斯智王(이사지왕)’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신라 금석문에는 나오지 않는 왕명(王名)으로 현재로는‘爾斯智王(이사지왕)’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박물관 측은“‘爾斯智王(이사지왕)’은 금관총의 주인공과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라면서 “그러나 다른 금석문이나 문헌에 나오지 않아 당시 신라 최고지배자인 마립간(내물왕∼지증왕) 중 한 사람의 다른 왕명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박물관 측은“‘爾斯智王(이사지왕)’이 당시 왕으로 불린 고위 귀족 중 한 사람으로도 추정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포항 냉수리 신라비(503년 건립)에 보이는‘此七王等(차칠왕등)’과 같은 기록을 통해 왕(마립간)이 아닌 사람도 왕으로 불렸던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박물관 측은“‘爾斯智王(이사지왕)’은 신라에서 6세기 전반까지 왕과 왕 아래 있는 갈문왕이나 간지(干支)를 가진 고위 귀족도 왕으로 불렸다는 일부 학계의 연구를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이번‘爾斯智王(이사지왕)’글자의 대상을 고위 귀족으로 본다면 금관총과 천마총 등 지금까지 금관이 출토된 신라 무덤을 마립간(왕)의 무덤으로 보는 많은 국내외 연구가 재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금관총은 1921년 주택 공사 중 신라 무덤에서 최초로 금관이 발견돼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간 유물 정리와 보고서 작업은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 독점됐고, 현재 대부분의 유물은 검토 없이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명문(銘文) 발견을 계기로 현재 진행중인 미공개 자료 조사 사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