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당시 야당 대표였던 존 케이 뉴질랜드 총리는 취재진과 함께 수도 중심가의 웰링턴스타디움을 방문했다. 3만4,500석 규모의 대형 운동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이웃 나라 호주로 일자리를 찾아 수십년째 인구가 유출되면서 쪼그라든 뉴질랜드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 태즈먼 해협을 사이에 둔 두 나라의 인구 및 경제지형이 바뀌고 있다. 지난 24년여간 뉴질랜드에서 호주로 이어졌던 이민행렬이 최근 역류하는가 하면 키위달러(뉴질랜드달러의 별칭)와 캥거루달러(호주 달러) 환율이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1대1에 근접해 '패러티(통화가치 등가)' 현상을 나타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영국 국영방송 BBC는 "24년 만에 처음으로 호주인들이 일자리와 살 곳을 찾아 뉴질랜드로 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질랜드와 호주 간 상호 이민자 수가 역전돼 4월 뉴질랜드의 대(對)호주 이민자 수가 24년 만에 처음으로 플러스로 전환(100명 순증)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매년 4월을 기준으로 한 뉴질랜드의 직전 12개월간 호주 이민자 순유출 누적규모는 2013년 3만4,000명, 2014년 1만1,000명에서 2015년에는 1,900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호주로의 인구유출을 막겠다던 케이 총리의 다짐이 웰링턴스타디움 방문 이후 7년 만에 실현된 것이다.
비슷한 역전현상은 외환시장에서도 빚어지고 있다. 1호주달러당 키위달러 환율은 4월21일 1.0054까지 떨어져 관련 통계 작성 이후 30여년 만에 최저치(통화가치 강세)를 기록했다. 1985년 3월4일 1호주달러당 1.6243키위달러로 현재까지 30년래 최고치(통화가치 최저)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 수준이다.
이 같은 경제·인구 역류현상은 두 나라의 경기 흐름 역전으로 빚어졌다. 철광석 등 광물자원 개발 및 수출에 크게 의존해온 호주 경제가 중국을 비롯한 주요 원자재 수입국들의 경기부진에 따른 광물수요 감소로 휘청이는 반면 농축산물 수출 등에 기대온 뉴질랜드 경제는 대외여건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으며 성장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계자료를 보면 뉴질랜드의 분기별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4분기 2.8%(전년 대비)를 기록하며 호주를 추월했고 4·4분기부터는 3%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1·4분기 3%대 성장률을 기록했던 호주는 경기둔화로 올 1·4분기 성장률이 2.1%까지 쪼그라들었다. 고용시장도 역전돼 뉴질랜드 실업률은 최근 4.5%까지 하락한 반면 호주 실업률은 6.0%대로 치솟았으며 연말에는 7%대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을 놓고 지난달 호주 일간지 '더오스트리레일리언지'의 캐머런 스튜어트 부편집장은 뉴질랜드인들에 대해 "호주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복지혜택을 빨아먹는 게으른 시골뜨기라는 조롱을 받아왔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키위(뉴질랜드인)가 복수를 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뉴질랜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제는 인재유출이 아니라 전례 없는 이민자의 급격한 유입에 따른 사회갈등 문제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4월 말 기준으로 직전 1년간 뉴질랜드로 순유입된 인구는 5만7,000명이었는데 그 중 상당수가 중국인 등이었다. 국민 수 450만명인 나라에 12개월간 인구의 1%를 넘는 외국인이 쏟아져 들어오는 데 대한 현지인들의 우려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