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반기문 차기총장과 CEO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은 요즘 오전7시만 되면 유엔 사무실에 출근한다. 사무총장 관저가 대대적인 개ㆍ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 맨해튼 50가에 있는 워도프아스토리아호텔에 임시로 기거하며 사무실까지 걸어서 나온다.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따라다니는 경호원들이 숨을 헐떡이고 혀를 내밀 정도다. 호텔과 사무실을 넘나들며 사무국 인수인계 작업을 서두르고 적임자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의 열정적이고 쉼 없는 업무 스타일에 모두 두손 들었다는 표정이다. 지금 유엔은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를 맞이하는 설렘과 함께 개혁과 혁신에 따른 긴장감이 짙게 배어 있다. 하지만 유엔을 출입하는 세계 각국의 기자단과 유엔 대사들은 반 차기 총장이 ‘뭔가 다르다’며 그에게서는 ‘성공한 기업 CEO’의 향기가 묻어나온다고 숨김없이 말한다. 과연 기업인들은 반 차기 총장에게서 어떤 경영 철학을 배울 수 있을까. 그는 승리의 나팔이 울릴 때까지는 철저하게 자신을 낮춘다. ‘로키(low key)’ 전략이다. 경쟁자들이 ‘나만이 적임자’라며 떠벌리고 다닐 때 자신만의 경영 전략과 철학을 설파하며 묵묵히 할 일을 한다. 이른 시간 안에 주가를 띄우려고 허위공시를 남발하거나 허울 좋은 상술로 투자자들을 현혹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가 한면을 할애해 반 차기 총장의 겸손함 뒤에 숨겨져 있는 카리스마를 높이 평가한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민심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무총장 결정권은 사실상 미국을 포함한 5개의 상임이사국이 쥐고 있지만 그는 나머지 유엔 회원국을 찾아다녔다. 다른 후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아프리카 국가들을 에어컨도 없는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우의를 굳건히 했다. 국제적 연대와 민족 의식이 강한 중동문화권에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카타르가 요르단 후보 대신 반 차기 총장을 지지한 것은 그의 이러한 노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회사 오너의 의중만을 따라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CEO가 아니라 소액 주주들의 파워와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한 예비 경영자였다. 맨해튼 유엔 본부에 들어서면 바로 역대 유엔 사무총장 사진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반 차기 총장 선출을 계기로 유엔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사진을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린다. 14일(현지시간) 반 차기 총장이 정식 취임해 유엔의 새 CEO가 된다. 취임식을 지켜보는 한국 기업인들이 세계 최고 외교관으로서 그가 제시하는 경영 철학을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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