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공동정범' 적용해 민·형사 책임 묻기 가능

■ 유병언 일가 처벌 어떻게되나

법원 "단계별 관계자 모두 책임"

성수대교·삼풍백화점 사고 때 경영·설계·관리자 등 처벌

유씨 일가 대주주에 불과하지만 실질적 책임자 입증 땐 공동책임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도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사고 당시의 정황 등이 속속 밝혀지면서 세월호 침몰은 인재(人災)였음이 더욱 명백해지는 모습이다. 승객 안전보다 회사 이익을 더 올리기 위해 선박의 복원력 저하를 불러온 무리한 증축을 단행하고 기준을 넘는 화물 과적을 일삼아 온 선사, 승객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외면한 채 제 몸 하나 살리기에 급급했던 선장과 선원, 부실한 감시·감독으로 이 모든 과정에서 나타난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한 한국선급과 해운조합. 어느 한 부분이라도 제대로 운영됐다면 이토록 처참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과연 이들 모두에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있을까.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과거 대형 재난 사고와 관련한 판결을 보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각 단계별 책임자들의 일부 과실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 단정하기는 어려워도 그것이 합쳐질 경우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면 공동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1994년 10월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이 같은 '과실범의 공동정범'에 관한 법리가 적용된 대표적 사례다.


서울 한강에 위치한 성수대교가 상부 골조 구조물 이음새 불량으로 무너져 내려 사고 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 붕괴 지점에 걸쳐있던 승용차 2대가 한강으로 추락, 32명의 사망자와 17명의 부상자를 낳은 대형참사다. 해당 사건과 관련돼 당시 성수대교를 시공한 회사의 현장소장과 사업소장 등 17명이 업무상 과실치상죄와 업무상과실 자동차추락죄 등의 공동정범으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특히 이 중에는 서울시 도로국장과 공사감독관 등 발주청인 서울시 공무원 등이 대거 포함됐다. 이들은 "자신들이 교량 건설의 극히 일부분에만 관여했을 뿐 교량의 부실 제작이나 감독상 과실행위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성수대교와 같은 교량이 그 수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설업자의 완벽한 시공, 감독 공무원들의 철저한 제작 시공상의 감독, 유지·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철저한 관리라는 조건이 합치돼야 한다"며 "각 단계의 과실만으로 붕괴 원인이 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합쳐지면 교량이 붕괴 될 수 있다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고, 따라서 위 각 단계에 관여한 자는 전혀 과실이 없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붕괴에 대한 공동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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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1995년 발생해 502명의 사망자와 937명의 부상자, 2,700억원대의 재산 피해를 낳은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삼풍백화점 건축계획의 수립부터 설계, 공사공정, 완공 후 유지관리 등에 이르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과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붕괴가 발생했다고 봤고, 각 단계별 관련자들을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했다. 해당 사고로 기소된 25명 중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는 총 13명이다. 시공 과정과 경영 전반에 책임이 있는 이준 삼풍백화점 회장과 이한상 대표이사가 각각 징역 7년 6월, 징역 7년을 선고받았고, 삼풍백화점의 설계와 공사에 관여한 건축소장·기사와 구조설계사, 건설사의 철근·철골 반장과 현장소장 등도 금고형 등을 선고받았다. 다만 당시 삼풍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설계변경을 허가해준 서초구청장이나 서울시 관계자 등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가 아닌 뇌물수수죄 등을 적용받았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법원의 기조가 유지되고 있기에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서도 단계별 책임자 모두에 형사 처벌이 내려지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고 내다본다. 검찰도 이미 과실이 뚜렷하게 드러난 세월호 선장과 선원,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김한식 대표이사, 한국선급의 책임자, 해운조합의 운항관리자 등에 잇따라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기소 초읽기에 들어갔다.

특히 검찰은 유병언 전 세모 회장 일가를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업무상 과실치사죄 공동정범으로 기소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 전 회장 일가의 경우 현재 표면적으로는 청해진해운의 주주에 불과해 직접적인 사고 책임을 묻긴 어렵다. 그러나 최근 검찰 수사에 따라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으로부터 매월 1,000만원의 월급을 받아왔으며, 청해진해운의 비상연락망이나 임원현황표 등에도 '회장'이라 기재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런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유 전 회장 일가가 청해진해운의 사실상 실소유자이자, 실질적 최고 책임자로서 세월호의 전반적 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유 전 회장 일가에 민·형사상 책임을 지울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유 전 회장 일가가 사고에 대해 형사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오게 되면 피해자들은 유 전 회장 일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갖게 된다"며 "영세업체인 청해진해운의 자산만으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손해배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에 유 전 회장 일가를 공동정범으로 기소하는 일은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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