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생산적 노사…꿈은 이루어진다

알란 팀블릭 <인베스트코리아 단장>

외국인들은 한국에 투자하는데 가장 큰 애로요인으로 노사문제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CNN 등 외국 언론에서 한국의 노동현장을 보도하는 것을 보면 붉은 머리띠를 맨 노동자와 우주인 복장처럼 보이는 전투복을 입은 진압경찰이 자주 나온다. 노동자들의 분신현장이나 화염병이 화면에 나오기도 한다. 외국 언론은 이러한 한국의 노사관계를 전투적 조합주의라고 부른다. 지난 10월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조사에서도 한국은 노사협력 분야 조사대상 93개국 중 92위를 차지해 최하위권인 것으로 보도됐다. 따라서 일견 이러한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그동안 한국의 노사관계를 지켜본 소회는 좀 다르다. 한국의 노동운동 역사는 선진국에 비해 아주 짧은 편이다. 70년 전태일씨의 분신 이후 한국에서 본격적인 노동운동이 시작됐다고 본다면(물론 이러한 인식은 필자가 한국 노동운동에 과문해서 잘 모르는 탓일 수도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 역사는 이제 30년 남짓에 불과하다. 노동운동의 본향이라고 할 만한 영국은 노동운동의 역사가 300년이 넘는다. 영국 노동운동도 초기에는 노동자ㆍ사용자ㆍ정부간 극렬한 대립을 겪었다. 영국뿐만 아니라 대다수 선진국들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선진국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룩한 노사문화의 잣대를 곧바로 한국에 적용해 한국의 노사문화를 판단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필자는 노동운동의 역사에 비해, 또 초창기 선진제국의 노동운동사에 비해 한국 노동운동은 그렇게 과격하지 않다고 보는 편이다. 둑이 터지면 처음에는 물살이 센 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물살도 제자리를 찾아간다.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87년 6ㆍ29선언 이후 민주화의 욕구가 분출하면서 노동운동도 과격화ㆍ전투화됐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그동안 막혀 있던 노동자들의 주장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홍역을 치뤘지만 이제는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인 것처럼 보인다. 내 자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 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노사협의는 점점 성숙돼가고 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약 12%에 불과하며 이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다. 또한 대부분의 노조활동은 비폭력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 한 외국기업 사장이 자신의 회사가 예전에는 노동쟁의를 겪었지만 지금은 노조의 지도자들과 매우 건설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생산적 노사관계는 기다린다고 해서, 또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노사 모두가 우리 경제의 주체이며 공동운명체라는 인식,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노력 등이 선행돼야 한다. 상대가 있는 대화나 협상의 기본은 ‘winner takes all’이 아니라 ‘win&win’이 돼야 한다. 이런 성숙된 문화가 자리잡을 때 외국 언론에서도 더 이상 한국의 노사문화를 전투적으로 묘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올해 일부 노동조합에서 정부나 지자체의 외국인자본 투자유치에 협력하기로 하고 옥석을 가린 건전한 외국인자본 유치를 위해 투자유치단에 노동조합 간부를 동행하게 한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언젠가는 “한국의 생산적인 노사관계 때문에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외국인투자가들이 줄을 설 것을 기대하는 꿈을 꿔본다.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을 믿으며….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