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시 對테러戰 구체적 비전갖춰라"

"근절"강조 修辭보다 세계 지지확보 힘써야부시 대통령, 야심차게 전개하는 테러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 제시 절실 지난 90년 9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후 몇 주 뒤 당시 미국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의회에서 "이 고난의 시간을 극복하면 우리의 목표인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가 도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이야기한 신세계질서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 폭력에 대한 단합된 모습, 그리고 모든 사람에 대한 공정한 대우"였다. 그의 아들인 현 조지 W. 부시 대통령 역시 이에 버금가는 비전을 제시했다. 바로 전세계적 테러 근절이다. 지난달 13일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눈물과 슬픔 뒷편에 있는 새로운 기회가 보인다"며 이에 대한 강한 실천을 표명했다. 이어 부시는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같은 생각을 밝혀 왔으며 지난 4일에는 "앞으로 다가올 세대(世代)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또 선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해"이를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아마도 이를 싫어할 세상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보좌관들은 그의 뜻과 현실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92년 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은 수없이 반복한 '신세계질서'가 단순한 '수사'(修辭)였음이 밝혀지면서 결국 선거에서 패배했다. 현 행정부내 일부 관료들은 이 같은 상황이 재현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수사는 수사일 뿐이다. 미 행정부가 이번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에서 진정한 승리를 원한다면 단순한 수사가 아닌 구체적인 비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수 개월간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몇몇 국가와 전쟁을 벌이는 한편 전쟁 피해자에 대해 식량과 피난처를 제공하고 즉각적인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만으로는 이 같은 목표달성이 어렵다. 그 어떤 것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존재해왔던 종교적ㆍ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을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수사에 가까운 '테러리즘 근절' 보다는 좀더 실천 가능한 '폭력사용을 정당화하는 테러리즘에 대해 세계 각국이 지지를 줄여나가는 쪽'으로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구체적인 비전을 세우기 위해서는 ▲ 이슬람 지역에 대량살상무기가 확산되고 있고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이 지속되고 있으며 ▲ 이 지역 대다수 정부가 비 민주적이란 점 등이 고려돼야 한다. 또 ▲ 인구 급증과 함께 지역 경제발전이 상당히 더디고 ▲ 미국ㆍ영국 등으로 이주한 이슬람교도가 많으며 ▲ 이슬람 극단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 역시 고려 대상이라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단 부시의 첫발은 주요국의 지지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부시대통령보다도 더 강도 높게 테러와의 전쟁을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 정상들도 미국의 이번 목표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으며 부시의 비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할 것임을 천명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미국과 함께 하기로 한 점이다. 러시아는 자신의 과거 영토였던 우즈베키스탄에서 미군이 작전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승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반대하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 전략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블레어 총리와 푸틴 대통령을 한 배에 태우는 것보다 어려운 게 가난과 종교적 극단주의가 팽배하고 서구의 정치와 문화에 대한 혐오감이 강한 중동 지역에 개입하는 일이다. 현 행정부가 이를 수행하는 데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즉 부시 행정부가 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부시 대통령은 단 한번도 이슬람교가 지배하는 나라를 방문해 본 경험이 없다. 딕 체니 부통령과 국가안보 담당 보좌관인 콘돌리사 라이스 역시 단순한 관료일 뿐이다. 군 출신인 콜린 파월도 역사적인 관점에서 중동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이슬람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또 문화적 특성이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게끔 만들고 있다.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 미 정부가 이슬람측을 달래기 위해 팔레스타인 정부를 인정하겠다고 한 발표에 대해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자신들을 희생해 이슬람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된다고 강력히 반발한 것도 이 같은 복잡함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테러를 종식시키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계획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이제 부시 대통령은 단순한 수사가 아닌 어떻게 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야 할 시점이다. 장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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