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문제, 비자금 수사, 이라크파병 문제 등 어수선한 정국에 대해 박재승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민주주의의 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제일 우려되는 것은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의견 자체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국론 분열이 아니고 `국민분열` 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각자 의론을 개진하되 합리적인 것을 근거로 최선의 안을 도출해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 자체를 무시하고 권위를 무시하고 인간 자체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그의 비판이다.
박 회장이 협회장에 취임한 것은 지난 2월 24일.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것이 2월 25일이니까 같이 시작한 셈이다. 재야 법조계의 대표로서 새 정부의 개혁추진 노력에 대해 때로는 지지하고 때로는 견제를 해오는 등 나름대로 보람 있는 8개월을 보냈다고 그는 평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에게 재신임 여부를 묻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고도의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이를 두고 법리논쟁을 벌인다거나 정략적인 논쟁을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은 나라를 경영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여론조사 추이에 따라 우왕좌왕 입장을 바꾸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으니 실망스럽습니다.
이 정국을 정치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얻습니다.
민주주의나 국가전체의 발전은 국민이 하는 것입니다. 부패 정치인을 비난만 하지 말고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부패정치인을 당선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국민의 책임입니다.
-정부가 폭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서 주택거래허가제 등 토지공개념을 도입할 모양인 데 혹 위헌의 소지는 없을까요.
▲정부가 어떤 안을 내놓을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섣불리 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하지만 자칫하면 국민의 본질적인 기본권을 침해할 수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제가 겪은 일입니다. 노태우 정부 때 토지거래허가제에 대한 위헌제청을 하도록 한 변호사가 바로 접니다. 제가 (서울)남부지원 앞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고 있을 때 충청도의 한 부동산업자가 구속되는 사건을 맡았습니다. 땅을 사가지고 관할 행정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팔아 넘기는 것이 구속사유가 되었습니다.
제가 살펴보니까 다른 방법으로는 모르겠지만 이것을 국토이용관리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인 것이 분명했습니다. 담당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심판제청을 했습니다. 2년여의 공방 끝에 5대 4로 위헌주장을 다수로 결론 났으나 위헌결정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위헌결정이 되려면 재판관의 3분의 2가 찬성을 해야 하는데 9명의 재판관중 5명만이 위헌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사법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진정한 사법개혁은 어떤 것일까요.
▲우선 사법부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점을 분명히 해야 사법의 기능은 법적인 잣대로 각종 규범적 이해관계를 정의와 형평에 맞도록 해결ㆍ조정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법관의 일입니다.
따라서 법관은 그가 해결ㆍ조정해야 할 이해관계의 내용은 물론이고 그 원인과 배경을 정확히 파헤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자기가 한 판결이 국민의식, 특히 준법의식에 미칠 영향 및 사회의 발전과의 관련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사법개혁은 의지만 있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말씀 드린 덕목을 갖춘 법관을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법조일원화가 그러한 법관을 확보하는 대안이 될까요.
▲사법연수원 커리큘럼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은 기존 판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머물고 있습니다. 법률가로서 자유분방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데 지금처럼 점수를 많이 따 발령을 받고 이것이 신분이 돼서 승진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그런 교육으로는 안됩니다.
-로스쿨제도 도입에 대해 반대하시지 않습니까.
▲미국식 로스쿨을 하려면 마찬가지로 미국처럼 대학의 학부과정은 없애야 합니다. 현재 논의되는 로스쿨은 이런 내용이 없습니다.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제도를 확대 운영한다고 합니다.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박탈하지는 않을까요.
▲반대합니다. 억울한 사정을 가진 국민들이 최종적으로 사법부에 호소하는 것입니다.사법부에 호소한다는 것은 대법원까지 가야 한다는 것인데 말 한마디 없이 심리를 끝낸 다는 것은 안 되는 이야깁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면 모든 게 끝납니다. 그래서 대법원의 구성이 중요합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대법관 상을 그려야 합니다. 이는 다양성을 핵심으로 합니다.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대법원에 들어가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합니다.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다며 대법원은 항상 `재판전문가론`을 들고 나오는 데 법관 수를 늘이는 등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풀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률시장 개방이 임박해있습니다. 변호사업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어떤 대안을 강구하고 계신지.
▲시장개방은 2005년도에 시작됩니다. 정부나 우리 변협에서도 외국변호사들이 들어와 본국법(외국법) 자문을 하는 것은 허용하되 한국변호사를 고용하거나 동업하는 것은 금지한다는 방침입니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1980년대부터 외국법 자문을 허용했는 데 최근에는 자국변호사의 고용과 동업까지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한 법률개방이 된 것이지요.
우리는 제한된 개방을 한다고 해도 전반적인 추세가 그러니 걱정스럽습니다. 결국 전문성과 경쟁력을 기르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제거래가 나날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법제, 특히 국제거래 구조조정 금융거래 등 선진법제들의 내용과 배경에 관한 부단히 연구하고 외국어 능력을 길러나가야 합니다.
-변호사에게 주어진 변리사ㆍ세무사 자격에 대해 관련 직역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원래 변리사는 변호사가 해야 하는 업무입니다. 선진국에서는 페이션트 로(Patent Lawyer), 즉 변호사인 변리사만이 소송대리를 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 아닌 변리사는 소송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법률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무사도 선진국에서는 있지도 않는 제도입니다.
이것은 조산원에게 산부인과 의사 노릇을 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국내에 외국에는 없는 수많은 유사직역을 만들어 놓고 변호사가 적다고 숫자만 마구 늘리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 대담:윤종열 사회부장 yjyun@sed.co.kr
[발자취] 판사출신 재야 법조계 대표,인권위원등 역임 개혁 솔선
박재승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직업인으로서의 변호사보다 법률가로서의 `재야정신`을 강조한다.
박 회장은 변호사협회가 전문 직업인들의 모임이지만 다른 직업군의 이익단체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말한다. 법률은 사회의 `공동 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법률가란 직업은 당연히 공권력 발동문제에 있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며 바로 이런 정신이 재야정신이라는 설명이다. 법조인 특히 변호사에게 재야정신은 반드시 필요하고 지금까지 변호사가 앞장서는 민주화운동이 우리나라 민주화의 또 다른 버팀목이 돼 왔다고 했다.
1939년 전남 강진군 출신인 박재승 회장은 71년 사시 13회로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73년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서울ㆍ제주ㆍ수원지법을 거쳐 81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과 대한변협 인권위원을 역임했고 `제주 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민간위원, 한겨레신문 감사 등으로 활동한 이른바 `개혁성향`의 변호사다.
2001년부터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 재직하던 중 최병모 민변 회장 등의 끈질긴 권유로 출마, 지난 2월 대한변협 42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박 회장의 출마를 강권하다시피 한 최병모 민변 회장은 지난 1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의 법무장관 제안을 받고도 고사하며 강금실 변호사를 추천, 관철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박 회장의 당선에는 젊은 변호사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큰 힘이 됐다
“국민의 기본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재야정신은 시대에 따라 달리 발현됩니다. 과거 군사독재시대에는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정권과 맞서기 위해서 재야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민주화가 된 상황에서 재야정신을 다른 모습으로 표출돼야 합니다.”
박 회장은 이제는 변협이 잘못된 법 제도의 개혁에 적극적으로 앞장섬으로써 진정한 재야정신을 발휘할 때라고 말한다. “변협은 적극적인 법률감시자로서 법이 잘못 운용되는 것을 시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법률단체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의 다짐이다.
약력
▲전남 강진(39년생)
▲광주고, 연세대
▲사시 13회(71년)
▲서울ㆍ제주ㆍ수원지법 판사
▲변호사 개업(81)
▲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내가 본 박재승 회장] 준법ㆍ인권존중사상 실천에 늘 앞장
대한변호사협회 박재승 회장은 준법, 인권, 사회정의, 민주적 기본질서 등을 가장 강조하고 이를 실천하는 드문 변호사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준법과 인권을 존중하는 사상은 그가 200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부터 적극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다. 서울시내 31개 경찰서에 매일 당직 변호사 1명씩을 파견, 경제적인 어려움 등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접견하며 인권침해 여부를 감시하는 `경찰서 순회 당직 접견제도`를 시행한 것이 그 하나. 목적 달성을 위하여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 탈법을 저지르는 우리 사회의 전도된 가치관을 개탄하고 어린 학생들의 준법의식, 인권의식, 민주시민 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해 변호사들이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찾아가 강의하는 `변호사 명예 교사제도`를 실시한 것이 그 둘이며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반독재 민주화투쟁과 인권옹호에 앞장섰던 고(故) 이병린 변호사가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까워 그 분의 흉상을 변호사회관에 세우고 우리 후배들이 그 분을 기억하며 각오를 새롭게 다지도록 한 것이 그 셋이다.
그는 2003년 2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형평에 맞는 법 집행을 강조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권력과 형평에 맞지 않는 자의적인 법집행을 감시하며 변협을 우리 사회의 최고, 최강의 인권단체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그 후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부패한 정치권에 대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형식적인 추인을 위해 모양새 갖추기로 소집 운영되는 대법관 후보제청 자문위원회를 박차고 나와 위원직을 사퇴하는 등 옹골찬 언행으로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다.
나는 그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는 아마 앞으로도 내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 확고한 길을 걸어갈 것으로 확신한다.
/최영도 변호사(참여연대 공동대표)
<정리=최수문기자 chs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