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 권터 그라스, 깡통 도덕주의자

‘양철북’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권터 그라스는 반미주의와 반세계화의 기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는 나치친위대(SS)에도 복무한 두 얼굴을 지닌 야누스였다. 그라스는 그로부터 61년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왔던 과거를 밝혔다. 자서전과 관련된 인터뷰를 하던 그라스는 1943년 15살의 나이로 먹고살기 위해 ‘유-보트(U-boat)’에 지원했다가 거절당했고 1년 뒤 홀로코스트로 악명 높은 SS부대에 가입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이 SS대원으로 세계 2차대전의 마지막 해까지 근무했다고 말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여전히 안개 속에 싸여 있다. 왜 지금까지 ‘나치 전력’을 비밀에 붙여왔는지에 대해서도 입을 닫고 있다. 단지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말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의 ‘비밀 고백’에 대해 혹자는 다음달 출간할 책을 팔아먹기 위한 음모라고 말한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를 용서하자는 동정론도 일고 있다. 당시 그는 고작 십대 소년에 불과했으며 단 한번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위선적 침묵이다. 그는 소설은 물론 정치적 행보를 통해서 ‘자유를 위한 투사’라는 이미지를 쌓아왔다. 이번에 그의 이력서에 새로 추가된 항목은 그동안 구축해온 이미지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또 한 가지 실망스러운 점은 그의 변명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자신은 그나마 인종 차별적인 미국인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GIS부대에서 백인 군사가 흑인 군사를 모욕하는 광경을 목격했다며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자신의 행동이 오히려 나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68년 그는 “미국이 자행한 베트남 전쟁은 독일이 세계 2차대전을 일으킨 것과 맞먹는 일”이라며 미국을 비난하기도 했다. 아마도 미국인들을 나치의 수준으로 낮추는 일이 그라스 자신에게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라스의 옛날 이야기다. 하지만 위선적인 그의 행동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더욱이 자신보다 남만 탓하는 태도는 지식인의 반성적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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