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경영 여건, 힘든 환경과 마주하고 있지만 제가 앞서서 모든 풍상을 다 맞을 각오로 뛰겠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7일 그룹사 사장단에게 "획기적인 투자확대 방안을 마련해달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 전문경영인들이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없는 현실적 문제를 인지하고 있고 오너인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질 테니 과감히 나서달라는 메시지다.
SK 관계자에 따르면 최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린동 SK 사옥에서 열린 확대경영회의 모두에서부터 자신이 갖고 있는 굳은 각오를 설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시종일관 '오너가 책임을 질 테니 과감히 투자하고 경영해달라'는 뜻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사업 여건이 어려운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투자를 확대해야 대기업이 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SK가 나름 노력해왔지만 자성할 부분도 있으니 함께 고민해보자"고 사장단을 다독였다.
이날 회의에서 정철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전략위원장 겸 SK이노베이션 사장,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는 "반도체 분야에 46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며 구체적인 진행 방안을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46조원을 공장 증설 등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투자해야 할 부분은 조만간 준공될 SK하이닉스 M14 공장의 생산설비다. 최신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인 M14 공장을 짓는 데 이미 2조3,800억원이 들었지만 공장에 들어설 장비에도 적지않은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이어 공장 증설 계획을 앞당기고 2개 공장을 잇따라 증설할 예정이다.
SK그룹 관계자는 "반도체 사업은 앞으로도 호황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설될 공장에서 어떤 제품을 생산하게 될지는 확정된 것이 없지만 고성능 모바일 D램이나 낸드플래시 부문 등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1년 최 회장 주도로 SK에 인수된 후 지난 2년 연속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한 그룹의 '효자 계열사'다. 하이닉스 인수 전 약 8조원 안팎이었던 SK그룹의 총 투자 규모는 인수 후 연 13조~14조원까지 늘어났다. 앞으로도 SK그룹의 투자확대를 견인하게 된다.
최 회장은 반도체 분야의 투자계획을 받아들이면서 에너지·화학, 정보통신 분야도 추가로 투자확대 방안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한마디로 성에 차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각 부문의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SK텔레콤이 조만간 구체적이고도 과감한 투자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북미 등지에서의 석유개발 사업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고성능 폴리에틸렌 공장 신설, 전기차 배터리 사업 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매출비중 70% 이상인 정유 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면서 자원개발·석유화학과 배터리 등 신사업 확장에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과감한 투자와 인수합병(M&A) 등에 관해 결단을 내릴 그룹 총수가 자리를 비우면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5년간 약 10조원을 투자했지만 2020년까지 향후 5년간 예년보다 약 10% 이상 많은 금액을 투자할 것으로 관측된다.
SK텔레콤은 4세대(4G) 롱텀에볼루션(LTE) 통신망에 이은 5세대(5G) 통신망 구축 시점을 앞당길 가능성이 점쳐진다. 또 내수시장에 한정된 통신사업이 한계점에 다다른 상황에서 M&A를 통해 신규 시장 진출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매년 1조~2조원 안팎이었던 연간 투자 금액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3개 주력 계열사가 공격적인 투자를 집행하면 오는 2020년까지 SK그룹이 약 80조원에 가까운 투자를 단행할 것으로 추산된다. SK그룹은 "아직 세부적인 투자계획은 다듬고 있는 중이지만 최 회장이 주문한 대로 '획기적인 투자확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