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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77> 견지동 우정총국


외세에 의존한 개혁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 갑신정변이다. 1884년 10월17일 김옥균 등 개화파들은 외척 민씨세력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킨다. 근대적 우편기관인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 주요 인사들이 모인 틈을 노려 정권을 장악하려고 한 것이다. 개화파는 일본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정변에 일본군도 참전시켰다. '3일 천하'로 알려졌듯이 쿠데타는 3일 만에 실패했다. 중국군(청군)의 개입에 따른 것이다. 청군은 2년 전 임오군란 이후 서울에 주둔해 있었다. 역사상으로 이들은 '급진 개화파'로 불린다. 외세에 의존했고 국민의 지지는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갑신정변 중에 일본군과 청군이 충돌한다. 일본군은 재빨리 발을 뺐지만 정변은 10년 후 청일전쟁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된다. 갑신정변은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도 잉태한다. 명성황후는 김옥균을 증오했는데 자객이 1894년 3월28일 중국 상하이에서 그를 살해한다. 일본 내 여론은 악화됐고 이듬해인 1895년 8월20일 을미사변 발생의 한 계기로 작용했다. 사진은 견지동 우정총국의 모습. 현재는 우체국 겸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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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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