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노사관계는 파업 건수와 근로손실일수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3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는 등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훈풍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내년 7월1일부터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기업들을 대상으로 내년 노사관계의 불안요인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5%가 복수노조 허용이라고 답했다. 또 기업 네 곳 중 세 곳은 복수노조 허용 등으로 내년 노사관계가 올해보다 더 불안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복수노조 허용이 내년 국내 노사관계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꿀 메가톤급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제도 시행을 불과 6개월 남짓 남겨둔 현 시점에서 이에 대한 준비가 매우 미흡하다는 데 있다. 고용노동부는 내년 초 복수노조 제도와 관련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공개할 예정이다. 늦은 감이 있는데다 정부의 매뉴얼이 나오더라도 노사 양측이 선뜻 수긍하기를 기대하기도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또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내년 7월 이전 법 개정 작업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노조의 최소 설립요건을 규정하는 일이다. 현행 민법상 조합설립 규정에 따르면 2인 이상이면 노조 설립 신고 및 유지가 가능하다. 물론 2인 노조가 실제로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한 사업장에서 노조가 난립할 경우 노사관계에 혼란이 가중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노조 이중 가입 문제 역시 민감한 사안이다. 현행법상 노조원은 복수의 노조에 이중으로 가입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및 단체협상 적용 등에 있어 혼란이 불가피하다.
내년 한국 경제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세계 경기 둔화 등으로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가까스로 회복된 국내 노사관계가 복수노조라는 덫에 걸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노사정 모두 머리를 맞대고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혼란을 줄이는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