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공공부문 가상파업제 도입 검토할 때

철도·지하철·병원 등 공공 노조 파업 금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파업기간에도 노사는 정상조업

노조 임금·사용자 이익 기부로 납세자 불편 최소화 방안 찾아야


한국의 노동운동은 1960년에는 경공업 부문에서, 1980년대에는 중후장대형의 중공업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즉 민간제조업이 노동조합운동의 핵심이 돼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 노동운동의 중심은 민간제조업에서 공공서비스 부문으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동조합들은 전교조와 전공노·금융노조 등 공공서비스 부문의 노동조합들이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위원장들도 과거 금속과 전자 등 민간제조업 노동조합에서 나왔으나 최근에는 금융·교원 등 공공서비스 부문의 노동조합에서 주로 배출되고 있다. 공공서비스 부문이 노동조합의 중심이 되는 현상은 선진국의 경우 수십년 전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이런 흐름은 제조업종사자의 감소와 서비스업종 종사자 증가와도 관련이 있고 민간 부문은 경쟁의 격화로 사용자가 노조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지만 공공 부문의 경우 신분보장이 상대적으로 강해 노조의 확산이 용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공 부문 노동운동의 확산은 노동기본권과 공공성 충돌이라는 과제를 남긴다. 즉 공공 부문 노조가 파업할 때 시민의 피해를 야기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문제가 대두하는 것이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공공 부문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일부 제한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즉 교사나 공무원 등은 파업을 못하게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철도와 지하철, 발전·병원 등 모든 공공 부문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것은 법적·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으므로 공공 부문 파업시 일반 국민들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일부 선진국에서 실험되고 있는 가상파업제도(virtual strikes, non-stoppage strikes)는 철도와 지하철·발전·병원 등 공익사업장의 경우 단체행동권은 허용하되 파업으로 인한 사회 불안정과 시민불편을 극소화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이다. 즉 파업기간 중 노사는 정상조업하되 노조는 파업기간 중의 임금을, 사용자는 이익(혹은 매출액 등)을 포기하고 공익적인 용도로 기부하는 것이다. 결국 납세자는 파업으로 인한 불편이 없지만 노사는 파업의 고통을 겪음으로써 파업을 종식하고 타결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노와 사는 노동위원회 등 공적 기관의 조정과 중재로 노사가 파업기간 중 포기할 임금과 매출액 산정과 기부방식을 결정하면 된다. 이 제도하에서 노사는 조업을 계속하며 가상파업기간 중 임금과 이익을 공익목적으로 기부함으로써 노사 모두 파업으로 인한 대중의 비난으로부터 해방되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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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도는 외국의 경우 이미 사용된 사례들이 있다. 최초의 사례는 미국으로서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대 미국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공장에서 파업이 발생하자 해군이 생산 계속을 명령한 후 노동자들의 임금과 회사 수입을 몰수했다. 이탈리아는 1999년 메리디아나항공사에서 조종사와 승무원이 가상파업을 했고 2005년에는 운송노조가 가상파업을 했으며 2009년에는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가상파업의 법제화를 논의하는 단계에까지 진전됐다. 이스라엘에서는 2003년 전국노동법원에서 공공 부문 파업을 금지하고 대신 가상파업을 허용했는데 가상파업기간 중 노조원은 임금을 받지 못하며 회사는 수익을 신탁계좌에 예치하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공공 부문의 파업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므로 가상파업제도를 일부 산업에서 실험적으로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를 도입한다면 기존의 단체행동권에 덧붙여서 노사가 합의할 경우 가상파업제도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파업이 대부분 철도와 지하철·버스·택시·금융·발전 등 일반 서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공공서비스 부문임을 고려한다면 가상파업제도도 학자들의 지적 유희로만 치부할 수는 없지 않을까.

김동원 고려대 노동대학원장(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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