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위기국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지면서 자금난을 더욱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독일 등 유럽 수뇌부는 해법을 내놓기는커녕 '치킨게임'에만 몰두하고 있어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헝가리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Baa3에서 정크(투자부적격)등급인 Ba1으로 강등한다고 24일 발표했다. 무디스는 성명에서 "헝가리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며 "유럽의 신용경색에 따라 자금시장이 얼어붙었고 경제성장 전망도 어둡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앞서 피치도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하향 조정한다고 발표해 시장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문가들은 유럽 각국의 국채가 대량 매도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터에 이처럼 등급 강등 도미노 현상까지 가세할 경우 자금경색이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을 낳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10년물 국채는 이날 다시 7% 선을 넘어섰으며 영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영국 정부의 양적완화(QE) 정책이 시행됐던 지난 2009년 3월 이후 처음으로 독일 국채 금리를 밑돌았다. 이는 시장이 영국 국채를 더 안전하다고 여긴다는 의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마리온 몬티 이탈리아 총재 등 3개국 정상은 이날 긴급 정상회담을 갖고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을 논의했지만 시장에 실망감만 안겨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정상들은 마지막 구원투수로 여겨졌던 유럽중앙은행(ECB)에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국채 매입 확대를 요구해온 시장의 기대를 무산시켰다. 메르켈 총리 역시 논란이 돼온 유로본드(유로존이 공동으로 발행하는 채권) 도입에 대해 "필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매우 부적절한 위기 대책"이라고 못박았다. 메르켈 총리 등 3국 정상은 유로존 국가들의 재무 상황을 감시할 수 있는 통합기구를 창설하는 한편 정치적 통합을 위해 EU 조약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시장이 원하는 단기 처방전과는 거리가 먼 대책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큰 그림만 그리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1조유로 규모로 확충하기로 한 유럽재정안정화기금(EFSF)마저도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주요 위기국의 국채금리가 너무 많이 뛰어올라 EFSF가 힘을 발휘하기 어렵게 됐다고 보도했다. EFSF를 활용해 위기국이 발행하는 채권의 손실액을 일정 부분 보증해주겠다는 게 유럽 위기 극복의 골자이지만 지금은 각국의 자금조달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 국채 시장을 모두 커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은 ECB가 국채 매입 확대 대신 은행에 대한 장기 대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익명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날 전했다. 현재 최장 13개월 만기인 대출 기간을 2~3년으로 늘려 자금조달에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ECB에 손을 벌리는 은행이 워낙 많고 대출 여력은 이에 미치지 못해 이 역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