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이노베이션 코리아] 1부. 혁신만이 살 길 <3> 갈등 조정 없인 국가혁신 없다

갈등비용 年 최대 246조 … 관리만 잘해도 GDP 7~21% 늘어

기초연금·영리 의료법인 등 제대로 대응 못해

소득·세대·지역·이념 싸움으로 확산 일쑤

원칙 지키되 유연성 발휘해 사회불안 줄여야



철도파업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14일 서울역 광장. 철도노조와 민주노총 조합원, 진보 성향 시민단체 회원 1만여명은 이곳에서 대규모 시국집회를 열었다. 철도 민영화 문제에서 시작된 집회는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과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같은 이슈까지 번졌다. 반면 인터넷에서는 철도노조원들의 임금이 도마에 올랐다.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배부른 파업'이라는 질책이 쏟아졌다. '일베' 같은 보수 성향 사이트에서는 노조원들을 폭도로 규정하는 사이 트위터 같은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에서는 KTX 요금이 40만원이 된다는 민영화 괴담이 떠돌아다녔다. 대한민국은 갈등공화국이다. 과거 님비(NIMBY)나 단순 지역갈등 수준을 넘어서 하나의 분쟁요소가 생기면 계층·이념 갈등으로 확산되고 여기에 SNS나 인터넷이 사태를 폭발시킨다. 갈등을 중재해야 할 정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되레 갈등을 확대·재생산한다. 민간 연구소가 추계한 갈등비용만 연간 최대 246조원에 달하는 게 우리 현주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터키에 이어 두 번째로 갈등수준이 높다.

◇중첩갈등에 제대로 대응 못하는 정부=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다원화하면서 요구가 다양해지고 최근의 갈등 양상은 소득·세대·지역·이념갈등이 혼재돼 나타나는 데도 정부가 지나치게 단순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당장 전·월세가는 폭등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는 34.9%에 달한다. 기초연금 갈등에서 보듯 급격한 노령화에 따른 복지갈등이 터져 나오고 통합진보당과 국정원 사태에서는 이념갈등이 분출된다. 최근에는 이런 갈등요소가 서로 혼합되면서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를 뒤흔들었던 광우병 촛불시위는 단순히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 문제를 넘어 이념·계층 간 갈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철도파업도 마찬가지인데 파업기간 중 나온 민영화 프레임은 의료산업 민영화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충남 천안에서 11~12일 전국의사총파업 출정식을 갖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원격진료 반대,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의료민영화) 반대 등이 명분이다.

문제는 사안의 성격을 결정하는 프레임 싸움에서 정부가 뒤처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주무 부처가 사회갈등의 성격과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다 보니 대국민 홍보나 정책집행에서 존재감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을 꺼내지만 '불통 정부'라는 말이 나온다.


원리원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종교계의 시국미사가 나올 정도로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갈등관리 방식에서는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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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지키되 유연성 있어야=전문가들은 정부가 원칙을 갖고 갈등관리에 나서되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철도파업에 법과 원칙대로 대처하긴 했지만 문제는 앞으로 노사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와 이들을 어떻게 품고 갈 것이냐 하는 점"이라고 조언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모델을 만드는 것은 최우선 과제다. 우리나라 갈등의 상당 부분은 경제 양극화와 상대적 박탈감에서 나온다. 노사갈등이나 이념갈등, 무조건적인 대기업 때리기도 경제적 이유에 주로 원인이 있다.

핵심은 시간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0년대에 연평균 4.1% 수준인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에 2.8%, 2030년대에는 1.7%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은 제한돼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원활한 노사관계를 유지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대통령 5년 단임제를 뼈대로 하는 1987년 체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대통령 5년 단임에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 선거가 계속 반복되다 보니 지역·이념갈등이 갈수록 커진다는 의미다. 무상급식 논란에서도 봤듯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이념과 지역갈등을 활용하는 탓이다.

전직 고위공무원은 "독재를 막기 위해 나온 1987년 체제는 이제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구조가 됐다"며 "대통령 연임제 등을 포함한 개헌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제라도 갈등을 막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갈등의 양상이 사회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탓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사회갈등에 따른 경제적 손실비용은 연간 적게는 82조원, 많게는 246조원이다. 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OECD 평균 수준으로만 개선되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21%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갈등만 잘 조정돼도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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