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월가 리포트] 소수지분으로 거대기업 흔드는 '주주 행동주의자' 입김 세져

애크먼·화이트워스 등 기관투자자 지원 힘입어<br>P&G·휴렛 패커드 등 경영실적 부진 기업 공략<br>경영전략·배당 변경 유도




'주주 행동주의자(Activist Shareholders)의 공격에서 자유로운 기업은 없다'

최근 주주 행동주의자로 유명한 윌리엄 애크먼이 세계적 소비재업체인 프록터 앤 갬블(P & G)을 공략하면서 월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애크먼이 운용하고 있는 퍼싱 스퀘어 캐피탈 매니지먼트는 20억달러를 투자해 P&G의 지분을 사들였다. 그러나 지분율은 단 1%에 불과하다. P&G의 시가총액은 1,780억달러 미국 상장사 가운데 13번째로 큰 대기업이다.


몇 년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의 지분으로는 대기업들의 경영이나 이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기업지배구조 변화와 주주 행동주의자들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의식변화로 소수지분으로도 거대기업들을 흔드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는 보도했다.

기업들의 실적부진과 경영진 위주의 경영행태에 반감을 가진 기관투자자들이 주주행동주의자들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기업들은 항상 누가 지분을 매입해 이사회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리는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또 이사회 진입이나 경영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주주행동주의자들이 이슈를 들고 나오면서 기업의 경영전략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만드는 일이 종종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인 휴렛 패커드가 한 해에 두 번씩이나 최고경영자를 교체하고, 주가가 곤두박질 쳤을 때, 주주행동주의자인 랄프 화이트워스의 릴레이셔널 인베스터 펀드는 단 1%의 지분만으로 이사회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또 그는 지난 5월 1%에도 훨씬 못미치는 지분으로 팹시코 공략했다. 그는 당초 성장성이 떨어지는 음료사업 부문을 분리하도록 요구했다가 회사측에서 실적을 개선시킬 수 있는 지 지켜보기로 하고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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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주행동주의자들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세계적인 기업사냥꾼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칼 아이칸은 클로락스 인수를 시도했지만, 다른 주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애크먼 역시 소매업체 제이씨 페니의 지분을 인수하고, 애플스토어를 만들어낸 론 존슨을 이사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존슨의 무 할인 전략은 철저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리서치업체인 팩트셋에 따르면 실제로 주주행동주의자들이 이사진에 진입해 있는 미국의 상장기업은 현재 93개로 지난 2008년의 135개 기업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는 주주행동주의가 수그러들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사진에 굳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경영전략을 바꾸거나 배당 등의 정책을 변경하는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다.

팩트셋에 따르면 올들어 시가총액 10억달러 이상의 대기업 129곳 가운데, 주주행동주의자들이 공략한 기업은 31개로 24%에 해당한다. 이 비율은 지난 2009년의 8%에 비해 급증한 것이다. 유명 주주행동주의자인 불독 인베스트의 필립 골드스타인은 주주행동주의자들의 역할을 "기업사냥꾼이 아니라 잠자고 있는 주식가치를 일깨우는 촉매"라고 정의했다.

이들 주주행동주의자들이 기업 공략에 성공하기 위해 기관투자자인 뮤추얼펀드와 연기금의 펀드매니저들을 끌어들이는데 가장 큰 공을 들인다. 이들 기관투자자들은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대체로 기업들의 경영에는 소극적으로 관여해왔던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P&G처럼 경영실적이 떨어지고, 주주가치도 제대로 제고하지 못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이들 기관투자자들의 태도도 변하고 있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는 지난 5월 다른 연기금들과 연합해 적극적으로 이사진에 진입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주주행동주의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법률회사 굿윈의 조셉 존슨 변호사는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미구기업들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평가했다.

기업들의 지배구조 변화도 주주행동주의자들의 활동반경을 넓혀주고 있다. 유명 식품회사인 H.J 하인즈와 크래프트 푸드를 공격하고 있는 주주행동주의자 넬슨 펠츠는 기업지배구조의 변화로 성역으로 남아있던 시가총액 500억달러 이상의 거대기업들을 공략하는 것도 훨씬 용이해졌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사들을 1년 단위로 선출하고 개별이사에 대해 과반수 이상의 주주 찬성을 얻도록 하고 있어 주주들의 행동을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 과거에는 시차를 두고, 수년간에 걸쳐 이사진을 교체했기 때문에 주주행동주의자들이 나서더라도 소수의 이사진만을 공략할 수밖에 없었다.

이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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