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은행채와 금융안전망


기획재정부는 은행채에 대한 지급준비금(지준금) 부과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은법 개정안 시행령을 지난 2일 입법 예고했다. 한은ㆍ금융위원회ㆍ시중은행ㆍ연구단체 등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한 뒤 23일 최종 내용을 결정할 예정이다. 재정부는 지준금 부과 대상을 발행만기 2년 이하 원화표시 은행채로 국한했고 산업은행ㆍ기업은행ㆍ수출입은행ㆍ농협ㆍ수협 등 특수은행이 발행하는 금융채는 부과대상에서 뺀 상태다. 특수은행과 시중은행을 포함한 전체 은행채 발행 규모는 180조원에 달한다. 이중 특수은행이 발행한 특수채가 102조원으로 전체의 57%를 차지한다. 시중은행이 발행한 은행채는 78조원이며 이 가운데 발행만기가 2년 이하인 은행채는 26조원에 불과하다. 지준금 부과 대상인 은행채는 전체 은행채의 14%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은행채에 대해 2%의 지준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이와 동일한 비율을 적용하면 시중은행의 총 추가 지준금 적립 규모는 5,200억원 수준이 된다. 은행들은 예치된 지준금만큼 운용자금을 새로 조달해야 하는데 이자비용 3.83%를 감안하면 이자부담은 200억원에 그친다. 시중은행의 은행채 지준금 부담이 그만큼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이는 결국 한은법 개정이 글로벌 금융위기시 금융안전망(safety net)구축에 일조할 것이라는 당초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재정부의 입법 예고안에 대해 실망과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김중수 한은 총재도 입법 예고안이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라며 내심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한은은 일부 특수은행채를 포함하거나 발행만기를 더욱 늘리는 방안을 재정부에 건의하는 등 막판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최종 판단은 재정부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국회에서 가까스로 통과된 한은법 개정안이 실효성 없는 '속 빈 강정'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앞으로 더욱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언제든지 블랙스완(돌출악재)이 나타날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재정부가 두 귀를 활짝 열고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경청한 뒤 난산(難産) 끝에 옥동자를 낳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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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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