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후보/“안정강조” 개혁성향 다소 부족/김대중 후보/“중산층 겨냥” 실현여부 미지수/이인제 후보/“호소계층 불분명” 일관성 결여한나라당 이회창, 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당선후 어떤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할까.
23일 동안 선거운동을 계속하며 주요 3당 후보들이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을 살펴보면 부분적으로 정책의 차별화를 시도했으나 장밋빛 공약이라는 일반적인 특성을 넘어서지는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3당 후보들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경제체제를 맞아 금융구조개선과 재벌정책, 산업구조조정 방안, 그리고 금융실명제를 바라보는 시각 등에서 거의 대동소이한 정책기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실금융기관의 조속한 정리나 인수·합병(M&A)제도의 개선 등을 세 후보 모두 금융구조개선의 필수적인 전제라고 보고 있고 재벌정책에 있어서도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의 점진적인 축소, 소유·경영의 분리 유도, 소액주주권리의 강화 등에서 명확히 일치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더욱이 3당 후보는 『기업의 M&A나 구조조정은 적극 추진하되 근로자 해고는 철저히 막겠다』거나 「금융실명제를 전면 유보하거나 대폭 수정 또는 금융종합과세의 사실상 폐지」를 주장하면서 「정경유착의 단절」을 강조해 상호모순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권자에게 정책적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다만 이회창 후보가 집권여당이 아니고 다수당임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운동 막바지에 안정을 호소하고 있는 데다 김영삼정부의 정책기조를 가장 많이 계승해 실현가능성은 다소 높은 편이나 개혁적 성향은 부족하다는 평이다.
반면 김대중 후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동시에 겨냥했고 과거에 비해 상당히 우경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타 후보에 비해 보다 중산층을 지향한 특징과 함께 실현 가능성에서 다소 점수가 깎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인제 후보는 신생 정당으로서의 이미지 선거에 치중했다는 평가와 함께 호소 계층이 불분명해 제시한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게 일반론이다.
따라서 3당 후보들이 당선해 집권한 뒤의 국정운영기조를 예측해 보려면 역시 각 후보의 경제관과 퍼스낼리티 및 정치역정을 감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우선 이회창 후보는 끊임없이 근원적인 사고를 하는 사색형이라 할 수 있다.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 「대쪽」이라는 별명을 얻기는 했으나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보는 실제로 경제계에서 저성장론이 대두하던 지난 봄에도 저성장이 야기할 실업문제 등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던 전례가 있다.
이후보는 따라서 과감한 소유지배구조의 개선 등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집권후에도 상당한 숙고의 시간을 소모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단 정책적 결정을 마친 뒤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반면 김대중 후보는 과거 물가관리를 경제운영의 항수로 놓고 나머지 경제현안을 풀어나가던 「대중경제론」에서 최근에는 상당히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후보의 젊은 시절 경제관이 선거를 여러번 치렀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성격이 아니며 아직도 국민회의의 공약중에는 부가가치세율을 현재의 절반인 5%로 낮춘다든가 하는 서민 지향적인 성격이 남아 있다.
물론 김후보는 경제현안에 대한 현상파악에 뛰어나 급변하는 국가경제의 변화에 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자신이 본래 지향하던 근로자와 농민에 대한 지원 약속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이인제 후보의 경우 아직 뚜렷한 경제관이 보이지 않고 있으나 「젊은 정치」와 변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운영의 상당한 파격을 예상케 하는 저돌형이라 할 수 있다. 이후보 자신이 선거전 초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김영삼 대통령을 「정치적인 아버지」라고 생각해 왔던 만큼 국민적 여론의 바람을 타고 다소 혁신적인 국정운영을 도모할 것으로 보이며 정부조직 개편 등에서 엄청난 소용돌이를 불러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편 남북문제와 관련, 이회창후보가 힘의 우위를 통한 한반도 평화기조유지를 강조해 사실상 군축 가능성을 배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고 반면 김대중 후보는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 적용을 내세워 자칫 대북정책의 유연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김인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