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모터스(GM)의 정크본드 추락에 대해 월가에서는 ‘미국의 자존심’이 무너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GM은 지난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와 무디스로부터 A등급 이상의 투자등급을 받으며 ‘무너지지 않는 제국’으로 통했다. 그러던 GM과 포드의 회사채에 대해 S&P는 ‘쓰레기’라는 이름표를 달아줬다. 세계 자동차 시장을 호령했던 이들 기업의 회사채가 투기등급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일부에서는 파산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GM과 포드의 침몰은 아시아 자동차 기업들의 맹추격으로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졌고 과다한 복지비용으로 금융부담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ㆍ혼다ㆍ닛산ㆍ현대자동차 등 아시아 경쟁 기업들이 미국시장에서 올들어 매달 10% 이상의 판매신장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과 달리 GM과 포드는 오히려 판매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GM의 미국시장 판매는 전달보다 7.4%나 급감했고 포드는 2.0% 하락했다. 올들어 4월까지 GM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25.6%로 80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포드도 지난해의 20.3%에서 19.2%로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다. 때늦게 인력감축과 한계공장 정리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경영합리화에 나서고 있지만 매출과 이익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경영전략 부재에 있다. 이날 S&P가 등급보고서에서 “GM은 스포츠유틸리차량(SUV) 판매호조를 기대하며 경영정상화를 꿈꾸고 있지만 고유가와 과당경쟁으로 SUV 수요는 정체상태에 들어갔다”며 경영진의 오판을 꼬집었다.
종업원에 대한 과다한 연금과 의료비용 부담도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지난해 GM은 직원 110만명을 위한 의료보험 비용으로 52억달러를 사용했고 올해에는 58억달러를 지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부진과 비용증가로 올 1ㆍ4분기에만 11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의료부담이 경영압박의 원흉으로 지목된다.
GM과 포드 경영진은 각각 200억달러, 190억달러의 현금과 유동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점을 들어 S&P의 투기등급 강등에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고 있지만 GM과 포드는 각각 2,910억달러, 1,613억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어 현금흐름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이날 표면금리(coupon) 8.375%인 GM의 2033년 만기 회사채 수익률이 11.494%로, 표면금리 7%인 2013년 만기 포드의 회사채 유통금리도 9.1%까지 뛰어오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기업의 채권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더욱 힘들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날 “GM은 자동차 부문의 적자를 금융 자회사의 이익으로 상쇄시키고 있는데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면서 금융 부문까지 실적악화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일부에서는 전날 GM 보유지분을 8.84%까지 늘리겠다고 선언한 억만장자 커코리안의 행보에 따라 GM의 경영정상화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3대 주주로 등장하는 커코리안의 GM 경영진에 대한 영향력과 입김이 강해지는 만큼 GM도 한계공장 폐쇄, 경비절감, 복지혜택 축소 등 경영혁신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결국 리처드 왜고너 GM 회장이 노조와 종업원들의 반발과 저항에 어떻게 대응하며 경영합리화를 이끌어낼 것인지가 잃어버린 미국의 자존심을 되찾을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