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눈치 들러리 역할 구태의연한 행태 문제증권사들이 자발적으로 결의한 '순매수 유지' 방침을 결의 6일만인 25일 철회해 '기관투자가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38개 증권사 사장단은 25일 오전 증권업협회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정부가 추진중인 '주식 1인1통장 갖기 운동'을 적극 벌이기로 결의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결의한 '순매수 유지' 방침을 철회했다. 물론 각 증권사들이 자율적으로 매도를 자제한다는 단서를 덧붙였다.
증협측은 "지난 주말 국내 증시지표가 세계 증시와 비슷한 수준을 나타내며 안정된 모습을 보여 별도로 매수우위를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됐다"고 결의해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상황들을 보면 단순히 정부정책에 호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들러리 결의'에 불과했다는 것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기관들은 이날 사장단의 결정을 기다리기나 한 듯 일제히 매도공세를 벌였다. 기관들은 이날 거래소에서 700여억원, 코스닥에서 64여억원어치의 주식을 내다팔았다.
기관들의 이 같은 매도세는 미국 뉴욕증시의 급반등에 힘입어 강세로 출발했던 주식시장을 하락세로 돌려놓아 오랜만에 희색을 띠었던 투자자들을 분노케 했다.
증권사 사장단은 이날 일반투자자들의 이 같은 분노를 의식한 때문인지 ▦시장안정에 1차적 책임이 있는 기관으로서 선도적 역할수행 ▦ 주식 1인1통장 갖기 운동 적극 전개 ▦주식형 수익증권에 대한 운용 및 판매수수료 폐지 및 인하 추진 등 또 다시 효과도 별도 없는 결의사항을 내놓았다.
그 동안의 순매수유지 결의도 시장에서 얼마만한 효과를 거뒀는지 의문이다. 기관들은 지난 17일 순매수방침을 결의한 뒤 지난 25일까지 거래소에선 2,457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그러나 코스닥시장에서는 오히려 266억원어치를 팔았다. 전체적으로는 2,200억원가량의 순매수를 보였지만 이 같은 금액으로 시장의 안정을 꾀하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장논리에 역행해 무리하게 순매수유지를 추진하면서 적지않은 부작용도 낳았다. 일부에선 "안하느니만 못했다. 일반투자자들을 오히려 기만했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기관들의 순매수 유지가 강요되면서 시장에서는 프로그램 매매가 위축되고 선물시장도 왜곡됐다. 또 일부 기관은 주식잔액을 늘리지 않고 순매수를 유지하기 위해 아예 매매규모를 줄이기도 했다.
물론 증권사 등 기관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주식을 순매수하라는 정부의 발상자체도 문제다.
그러나 증권사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증협이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해 자발적인 결의형태로 증권사의 손해를 강요한 것은 협회설립 목적에 배치되는 행위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도 정부가 뭐를 하라고 하면 야단법석을 떨어야 하는 구태의연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며 "이른바 '순매수 유지' 약속을 지키는 지 증협이 나서서 매일 매매자료를 보고 받는 유치한 일을 반복한다고 침체된 증시가 살아나겠느냐"며 고 힐난했다.
압력과도 같은 정부의 권유에 부응하기 위해 시장논리에 역행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진된 결의가 어떻게 효과가 있겠느냐는 자조적인 대답이다.
이용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