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총선이 한달 남짓, 미국의 대선이 7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양국 정부는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씨름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02년과 2003년 각각 6.3%와 2.9% 성장을 기록했으나 각각 3만개와 4만개의 일자리가 줄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3ㆍ4분기 중 8.2%의 경이로운 성장을 기록했고 4ㆍ4분기 들어 4%대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3%대의 건실한 성장을 이룩했다. 지난해 말 경제성장률에 고무된 조지 부시 W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실행한 감세정책의 약효가 나타나고 있다며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장담했으나 1, 2월 중 미국노동통계청이 내놓은 고용통계는 그 반대였다. 취업자 수가 다소 늘었으나 취업대상인구 증가율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일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일자리창출 한미 공통의 과제
이런 식으로 가면 부시 대통령은 취임 후 280만개의 일자리를 잃어 허버트 클라크 후버 전 미국 대통령 이후 가장 실업자를 많이 낸 대통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민주당은 5,000억달러의 재정적자 가운데 3,000억달러가 감세정책에 원인이 있다며 3,000억달러를 고용창출에 썼다면 6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실업과 감세정책을 싸잡아 공격한다.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해 다양한 원인진단과 처방이 나오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불황기에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신규고용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둘째는 기업의 생산기지 해외이전, 셋째는 미국인 노동력을 대체하는 불법이민자가 꼽힌다.
국내 고용에 문제가 생기면 보호주의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모든 나라 정치인들의 속성이다. 생산성 향상에 따른 고용감소는 보호주의적 처방으로 될 일은 아니지만 생산기지의 해외이전과 불법이민자 문제는 보호주의적 처방을 내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이테크 분야의 해외 아웃소싱 금지, 해외이전에 중과세, 불법이민자 단속강화 등의 처방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종류의 처방은 수입규제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이 같은 정치적 민감성을 의식했건, 안 했건간에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의 그레고리 맨큐 의장이 보호주의에 반대하는 의견을 용감하게 제기해 논쟁을 한층 뜨겁게 달궜다. 저임금국가의 생산시설과 서비스를 아웃소싱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미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다. 그러자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조차 실업자의 아픔을 외면했다면서 그의 파면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에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보호주의는 상대국의 보복을 초래해 미국 내 일자리를 더 줄이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맨큐에 대한 엄호에 나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실업문제는 미국 대선의 최대 이슈로 무르익어가고 있다. 미국의 실업문제는 바로 한국의 문제다. 처방도 비슷해지겠지만 원인은 더 많이 닮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생산성 향상 노력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큰 추세를 형성하고 있다. 생산의 해외 아웃소싱 문제는 미국보다 더 심각해 산업공동화의 경고음이 울린 지 오래다. 미국의 불법이민자 문제는 우리의 불법 체류 외국인근로자 문제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과 달리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로서 보호주의에서 처방을 찾을 수 없다.
공약조차 실종된 최악의 선거
미국과는 보다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런 민생에 관한 문제가 선거 이슈로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번 총선은 아예 이슈가 없다. 역대 어느 총선도 최소한 이러지는 않았다. 있느니 탄핵이요, 대선자금 수사다. 한마디로 x판 선거다. 기권을 하라고 권유할 수 없음을 탄할 뿐이다.
<논설실장 imj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