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취임한 서영제 서울지검장이 최근 악화되고 있는 국내외 경제여건을 감안해 재벌비리 관련 수사를 유보할 뜻을 시사해 주목된다. 이는 최근의 경제동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수사의 속도와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향후 재벌의 부당내부거래를 통한 편법 상속ㆍ증여 등 비리의혹에 대한 수사는 경제상황을 봐가며 탄력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수사유보` 배경은=지난 11일 SK그룹의 1조5,587억원의 분식회계 수사발표 이후 SK는 물론 금융권 등 경제계에 미치는 파장이 예상보다 커지면서 조속히 경제불안 심리를 걷어낼 필요성이 대두된 게 직접적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북핵과 이라크 사태 등 국내외 위기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벌기업에 대한 수사는 `자칫 경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검찰이 접수한 것이다. 시민단체로부터 편법 증여ㆍ상속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전전긍긍하는 대기업들이 경제활동에 전념케 하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이달 말 송광수 신임 검찰총장 후보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상황에서 과반의석이 넘는 한나라당이 재벌수사를 반대하는 것도 수사유보의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6대그룹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연기하는 등 경제회복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경제5단체장과 만나 “SK수사가 검찰의 단독 결정”이라며 “앞으로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전망은=“검찰이 국가를 망하게 하는 기소는 할 수 없다.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 모든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며 기소유예주의를 들어 재벌수사 유보를 시사한 서 검사장의 말은 검찰의 재벌수사에 대한 자세가 상당히 달라졌음을 반증한다. 검찰로서도 이번 SK 수사를 통해 재벌 오너의 전횡을 막고 기업들의 경영투명성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됐다는 점에서 다른 재벌그룹에 대한 소나기식 수사의 효용이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SK와 비슷한 수법의 부당내부거래 등을 저지른 혐의로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당한 삼성 등 다른 재벌들에 대한 기획수사는 상당 기간 유예될 전망이다. 검찰은 SK 수사발표 직후 “삼성 등 다른 그룹들의 비리사실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당분간은 수사를 확대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여운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두산의 부당내부거래 의혹과 한화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조사에 들어가겠다는 방침을 누차 밝힌 만큼 조사는 하되 시기와 처벌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광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