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전직 경제수장에게 듣는다] <1> 김용환 前재무부장관

"현재 경제위기는 도 넘었다 정부·기업·국민 고통분담을"


김용환(사진) 전 재무부 장관은 “현재 경제위기는 도를 넘었다”고 진단하고 “정부와 기업, 국민(가계) 등 경제 주체들이 고통분담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창간 48주년 특별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이같이 강조하고 “기업과 가계의 고통분담에 앞서 청와대가 맨 먼저 (고통분담에) 솔선수범해야 기업과 가계를 설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장관은 “과거 개발연대의 경제정책은 이제는 맞지 않다”고 분명히 한 뒤 “거시지표들을 총량적으로 살펴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 수단을 ‘금리정책’으로 꼽고 “과거 정부가 관심을 기울였던 생산과 건설은 기업에 맡기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충고를 말해달라고 하자 “국정운영의 중심축을 내각에 두라”면서 “모든 일을 하려고 과욕을 부리지 마라”고 조언했다. 현정부 국민 눈높이 소홀히 하다 신뢰 잃어
청와대부터 솔선수범후 기업·가계 설득해야
-이명박 정부의 지금까지 국정운영을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 출범 5개월 만에 국정 지지도가 반토막 이상 났으니 어떻게 좋게 평가하겠나. 가장 잘못한 것이 인사다. 인사 실패로 국민이 분노하기 시작했는데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너무 졸속으로 하는 과오까지 범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내가 일했던 개발연대와는 전혀 다르고 많이 높아졌다. 그걸 모르고 정부가 너무 미숙하게 대응해 신뢰가 더욱 땅에 떨어졌다. -인사 실패가 컸다고 지적했는데 그 근본원인은 뭐라고 보나. ▦국민 의식 수준이 높아졌는데 새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같은 구호나 외치며 국민 눈높이를 너무 소홀히 했다. 또 지난 얘기를 해서 안 됐지만 청와대 1기 비서진을 주로 학계 출신으로 채웠는데 청와대 비서실이 연구실인가. 청와대 비서는 문제가 생기면 즉각 대응하고 어떻게 처리할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부의 국정운영 중 경제 부문도 한 말씀 해준다면. ▦이명박 정부가 너무 현실을 무시하고 경제에서도 과욕을 부렸다. 초고유가로 에너지 위기가 오고 저성장 국면에서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직면하는 삼각파도를 만났는데 747 정책 등 성장에 무게를 두고 시작했다. 경제운용을 ‘축소’에 둬야 했다. 이러한 초기 판단 착오로 정책 집행이 벽에 부딪히니까 후퇴하고 일관성을 지키지 못하며 오락가락했다. ‘경제를 잘 할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가 컸는데 오히려 경제에서 실수만 하니 국민의 신뢰를 더욱 잃은 것이다. -MB노믹스의 핵심은 규제완화와 감세로 볼 수 있는데. 방향이 잘 정해졌다고 보는지. ▦새 정부가 작은 정부와 감세ㆍ규제완화를 지향했는데 방향설정은 잘 된 것으로 본다. 문제는 경제의 당면과제가 물가고와 서민생활 불안정인데 이걸 놓쳤다. 서민대책은 소통도 안 됐다. 복지를 포기하거나 줄인 것도 아닌데 비즈니스 프렌들리만 강조하다 균형감각을 상실해 고물가로 고통 받는 서민에 대한 언급이 적었다. 서민의 불안한 생활에 정부가 기능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경제정책의 단기적 과제와 장기적 과제를 나눈다면. ▦서민 생활대책이 최우선인 것은 말했고 동시에 강력한 에너지 절약 정책과 산업 전반에 대한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공기업 개혁은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의 토대를 굳건히 하는 데 있어 중요한데 지지부진해지는 것 같다. 과거 개발연대 정책, 지금 상황에선 맞지않아
생산·건설은 기업에 맡기고 금리정책 주력을
-정부의 고유가 대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부가 에너지 위기라고 말하면서 왜 꾸물대는지 모르다. 배럴당 유가가 170달러를 넘어야 반강제적 에너지 절약 조치를 취하겠다는데 현재 경제위기는 도를 넘었다고 본다. 즉각 에너지대책을 강도 높게 실시하고 필요하면 특별 입법을 해서라도 에너지 절약에 들어가야 한다. 일본은 1차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는데 우리는 성장률과 원유수입량 증가가 계속 함께 간다. 개발연대와 달리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시민사회라는 또 다른 세력도 있어 소통에 시간이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정부가 에너지대책에서 말만 많지 과감히 실천을 못했기 때문이다. -난국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국을 극복하는 길은 결국 정부와 기업, 국민(가계) 등 경제의 세 주체가 고통분담을 하는 것이다. 고통분담에 국민이 동참하려면 정부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청와대가 맨 먼저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과 기업을 설득할 수 있는 도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정부는 안하고 ‘너희만 구조조정하고 에너지 절약해라’ 그러면 안 된다.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오일쇼크ㆍ외환위기도 이겨냈으니 정부가 솔선수범하면 기업과 국민이 힘을 모아줄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정부가 앞장서 위기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정부가 진솔하고 정직한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공연히 국민불안감을 조장하고 협박하는 것 아니냐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객관적이고 경험적 자료들을 가지고 말해야 한다. 문제는 위기상황뿐 아니라 위기를 타개할 대책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꾸 위기라고 말해서 위기를 키울 수도 있는데 위기를 극복할 의지와 방법을 잘 설명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에 재무부 장관과 경제수석을 했는데.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지향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내가 일한 시절에는 생산과 건설이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시지표들을 총괄적으로 살펴 경제정책을 펼 때다. 개발연대 경제정책은 지금 시점에서는 맞지 않다. ‘관치금융 하면서 고도 성장을 이끌었던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느냐’고 비판하겠지만 그런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때 정책은 지금 시대상황에 맞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 수단은 금리정책이다. 과거에는 금리가 중요한 정책수단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금리를 중심으로 거시경제정책을 잘 해서 시장이 정부정책에 순응하도록 해야 한다. 생산과 건설은 기업에 맡기면 된다. 국정운영 중심축을 청와대 아닌 내각에 두고
대통령이 모든 일 하려고 과욕부리지 말아야
-현 경제상황에서 특히 경계할 점이 있을까. ▦해외 부문을 자칫 방심할 가능성이 있는데 조심해야 한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서 촉발된 국제금융 위기가 언제 활화산이 될지 모른다. 이것이 국내 경제와 금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살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 건의 또는 조언할 말은 없는지. ▦국정운영의 중심축은 내각이다. 청와대 비서실이 아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국정목표를 내각이 어떻게 실천할지 비서실은 대통령과 내각이 소통하는 통로 역할만 하면 된다. 대통령의 참모는 각 부처 장관이다. 비서는 그저 비서일 뿐이다. 비서와 일할 거면 각 부 장관을 차라리 주사급으로 해야 한다. 최근 국무총리가 위치를 회복하는 것 같은데 총리가 하는 일이 자원외교한다고 돌아다니는 그런 일이 우선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모든 일을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인수위 시절 전봇대 뽑는 것부터 해서 너무 과욕을 부리는 거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중심축을 내각으로 이동시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또 국가경영은 항상 국민과 함께 걸어가고 시대상황의 정곡을 찔러서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데 기업경영의 경험만 가지고 자신 있게 끌고 나갈 수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 ‘실용’이라는 미명 아래 철학과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을 예사로 해서도 안 된다. ■김용환 전장관은
60~70년대 성장신화 이끈 '경제관료 대부'
1차 오일쇼크·외환위기등 고비때마다 해결사 역할 '소방수' 명성 높아
희수(喜壽)를 바라보는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은 살아 있는 한국 경제관료의 대부다. 30대 중반 경제관료의 꽃인 재무부 이재국장을 지낸 그는 40대 초반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에 올랐고 곧장 재무부 장관으로 직행, 4년4개월 동안 주식회사 한국호를 이끌었다. 한 시절 한국 경제를 호령했던 진념ㆍ이규성ㆍ이헌재 등 기라성 같은 공무원들이 모두 그의 휘하에 있었다. 개발연대 초고속 성장의 신화로 대변되는 김 전 장관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제위기 소방수'로 오히려 그 명성이 높다. 지난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며 갑작스럽게 오일쇼크가 터지자 국제유가는 두달 사이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4배 가까이 급등했다. 치솟은 유가로 무역수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외환보유고가 급전직하하며 한국은 국가 부도 위기에 놓였다. 당시 재무부 차관이던 정인용씨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차 오일쇼크로 외환보유액이 1,000만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회고했다. 경제수석에서 재무부 장관으로 급파된 김 전 장관은 국내외 인맥을 총동원해 달러를 확보하고 원유 수급선 유지에 총력전을 펼쳤다. 1997년 말 불어닥친 환란 수습에도 김 전 장관이 전격 투입됐다. DJP 연합을 끌어내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이 된 그는 외환위기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기용돼 외채협상을 주도하며 경제위기의 최전선에서 선봉장 역할을 했다. 한국 경제의 고비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한 김 전 장관은 최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교체 여론에 대해 "기본적으로 사람을 바꾸는 것이 인사에서 능사는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위기국면에서 경제수장은 국내외적으로 신뢰를 받는 사람이라야 한다"고 강조해 여운을 남겼다. 재무부 후배인 강 장관을 세제통 정도로 기억한 김 전 장관은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는 특히 '국제금융계나 외국인투자가가 믿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나라 정부 역학관계의 특성상 경제부총리가 있어 국정의 축을 나눠 맡는 것이 좋다"면서도 "부총리제가 만능은 아니고 그 자리에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인물이 앉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정부 초기 반(反)관료 분위기가 팽배한 데 대해 "국정운영의 말초신경은 관료들이 쥐고 있다"며 "규제개혁 등을 하는 데 관료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잘 설득하고 사기를 높여줘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자신도 관료 출신으로 "욕 먹을 각오로 말하겠다"면서 그는 "정치인이나 별 경험도 없는 인사를 중용할 거라면 차라리 기본적인 전문성과 경험은 갖추고 있는 관료가 더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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