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 같은 춘향이었다면 내가 연출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연출 거장 안드레이 셰르반(사진)이 외국인의 눈으로 한국의 대표 사랑 이야기 춘향을 새롭게 써내려간다. 그것도 한국인조차 낯설어하는 장르 '창극'을 통해서.
셰르반은 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의 공연 '다른 춘향'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춘향전을 비롯한 판소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처럼 여러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열린 재료"라며 "춘향의 정신과 창극이라는 전통 장르가 오늘을 사는 누구에게나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오는 20일 개막하는 '다른 춘향'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기존에 알려졌던 춘향과는 '다른' 노선을 강조한다. "이상 없는 시대에 춘향은 '사랑'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영웅입니다." 외국인 연출이 바라본 춘향전은 몽룡과 춘향의 러브스토리가 아닌 사랑이라는 이상을 지키기 위해 불의에 맞서는 한 인간의 이야기였다.
작품의 배경과 캐릭터는 현대의 옷을 입는다. 몽룡은 정치인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 내려온 클럽을 즐겨 찾는 대학생으로, 성춘향은 몽룡을 향해 "서울 여자애들 아니면 교양 있는 재벌가 딸들과 어울리고 있느냐"고 쏘아붙이는 가난한 남원 아가씨로, 변학도는 호색한으로 유명한 신임 시장으로 변신한다.
캐릭터는 물론 대사와 의상·연기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지만 극 중 등장하는 사랑가·쑥대머리 등 판소리는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다. 주연배우 정은혜가 '다른 춘향'을 '전통과 현대의 즐거운 혼재'라고 표현한 이유다.
이번 창극에서는 파격과 재미를 추구하는 안무가 안은미의 안무와 공연 내내 투사되는 독특한 비디오 영상도 어우러져 신선한 감흥을 선사할 예정이다. 셰르반은 "이번 작품은 결과를 알 수 없는 설레는 창조 작업"이라며 "위험 있는 모험작이지만 꼭 브로드웨이쇼처럼 전 석 매진시키고 상업적으로도 호평 받는 작품을 만들어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달 20일부터 12월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