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벤처 본연임무는 기술개발"

■ 벤처 새 패러다임 열자"불활이 구조조정 기회" 재무건전화 바람 확산 코스닥 기업인 T사. 이 회사는 최근 영국의 모증권사 및 투자회사와 투자협상을 진행 중이다. 단순한 투자협상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지분의 절반 이상을 신주 인수 방식으로 넘기는 사실상의 매각이다. "우리 회사는 기술개발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J 사장의 말이다. 그동안 양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거듭해온 벤처산업이 새로운 비상을 위한 날갯짓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많은 수의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들이 경영실적이라는 '껍질'에 매달리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인식의 전환과 기업 구조 자체의 변화를 통해 말 그대로 '벤처'라는 나비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애벌레에서 나비로 거듭나기 위한 몸짓은 아직 미미하지만 곳곳에서 준비되고 있다. 벤처 관련 업체의 인수합병(M&A)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나 지분에 연연하지 않는 최고 경영자의 모습, '세계최고 기술'을 향한 열정 등은 비상을 위한 초석이 되고 있다. ◆ M&A 시장을 키워라 M&A 컨설팅 업체에 따르면 하반기 이후 매물로 등장하고 있는 벤처기업수는 지난해와 비교해 두배 이상 늘어났다. 경기하락의 여파가 가장 크다는 지적이지만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기술을 상업화로 연결해줄 업체를 찾는 예도 적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컨설팅업체인 K사에 매물로 나온 한 기업은 홈네트워킹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상업화해줄 업체를 찾고 있었고 또 다른 M&A 부티크 회사에 매각을 의뢰한 기업은 오수처리 기술을 사업화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로 M&A가 성사되는 경우는 20%가 채 되지 않는다. M&A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자금에 여유가 있는 대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국내에서는 '총액출자제한' 규정 등 각종 규제로 인해 이를 인수한다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벤처밸리가 조성되는 곳에는 거의 예외 없이 그 기술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기업이 존재한다. '벤처 메카' 실리콘밸리의 시스코시스템스가 있고 신흥 벤처밸리로 등장하고 있는 뉴저지에는 루슨트 테크놀로지가 있다. 현지 벤처기업인들이 "대기업에 M&A되는 것이 최대의 숙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기업의 존재가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 기업구조 변화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된 이후 지난 35년간 국내기업을 지배한 것은 '빚을 통한 경영'이었다. 은행을 통해서 빚을 얻어 몸집을 불리고 이를 담보로 다시 돈을 빌리는 것이 대기업의 모습이었다. 그 결과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라는 국치로 이어졌다. 벤처의 등장은 이러한 기업구조를 뿌리부터 바꾸는 계기가 됐다. 차입에서 투자로의 전환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것이 점차 퇴색하는 모습을 보인다. 계열사 확장을 통한 '군단' 조성, 일부 대형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한 은행융자 증가 등은 "벤처가 대기업을 닮아간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최근 경기불황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자금난에 처한 벤처기업들이 재무구조 건전화를 위해 빚을 줄이고 투자유치를 위한 기업가치 제고에 발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코스닥 기업 중 상당수가 회사채 및 전환사채를 중도에 상환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IMF와 마찬가지로 위기가 다시 기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 소유의식 탈피 올해부터 정부의 국책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N사. 극미세 칩을 개발하고 있는 이 기업의 사장은 '기업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든 필요하면, 또 이 기술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이 기술을 넘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한 자신은 다른 응용기술을 개발하면 그 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벤처의 기본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한국에서 벤처의 역할은 상용화기술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을 소유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벤처의 영역을 벗어나 평범한 기업이 되는 것이다. 기술을 개발해 필요한 곳에 넘기는 것까지가 벤처의 역할이다. 최동규 중소기업청장도 6일 벤처캐피털 사장과의 간담회에서 벤처가 가야 할 방향을 지적했다. "기술을 개발해서 팔고 다시 기술을 개발해 파는 것, 그것이 벤처의 길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들이 갖춰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벤처캐피털 보유지분 매각제한, M&A에 대한 각종 규제, 벤처기업에 대한 각종 융자지원 등 시장이 아닌 인위적인 조치만으로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 벤처기업의 구조조정은 이제 겨우 출발선상에서 선 상태다. 벤처가 경제의 주축으로 다시 서기 위해서는, 또 세간에서 떠도는 것과 같이 벤처가 이번 정권에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성장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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