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오타와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약 20분쯤 달리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넓은 평원에 일단의 건물이 밀집해 있는 곳을 만나게 된다. 동서로 날개모양을 한 두개의 건물과 얼핏봐도 첨단의 냄새가 물씬풍기는 8각형의 5층 건물이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여기가 바로 세계적인 통신장비회사로서 최근 급속한 변신을 통해 더욱 주목받고 있는 노텔네트워크의 중앙연구소 「CARLING CAMPUS」다. 노텔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통신기술개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연구소 인근에는 캐나다 통신기술업계에서는 내로라 하는 전문업체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이 지역을 「실리콘 밸리 노스」라고 부른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북쪽에 위치한 새로운 실리콘 밸리라는 뜻이다.
지난 1961년 문을 연 연구소는 넓이만 30헥타르에 달하고 5,000여명의 연구진이 새로운 통신기술개발에 여념이 없다. 이들은 인근지역 및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12만명의 노텔연구원과 거미줄같은 연결망을 갖고 있다.
노텔은 오는 2001년까지 2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현재와 거의 같은 규모로 추가연구동을 건설, 연구기능을 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맑은 공기, 강한 지반, 소음이 없는 조용한 여건, 기술인력을 제공받을 수 있는 대학 등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제품을 다루는 통신연구소의 입지조건으로서는 더할 수 없이 최적이라는게 회사 홍보담당 부사장 벨마 르블랑씨의 설명이다.
노텔네트워크는 노던텔레콤이 세계적인 데이터 네트워크회사인 베이네트워크와 합병하면서 바뀐 이름이다.
노텔이 세계 통신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기술조류에 따른 신속한 변신, 다양한 전문 기술회사의 인수를 통한 앞선 기술투자로 성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텔은 올해 8월28일 협상 개시 75일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베이네트워크와 합병해 주목받았다. 베이네트워크는 지난해 매출 23억2,000만달러에 종업원 7,000명규모의 회사로 데이터 네트워크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노텔이 이 회사와 합병한 것은 지금까지 음성위주의 통신시스템에서 데이터네트워크로 주력분야를 변화하겠다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세계적인 통신기술의 변화추세와도 맞는 내용이다.
벨마 르블랑씨는 『베이네트워크인수는 노텔의 발빠른 변신을 보여준 사례』라며 『이제 노텔은 음성과 데이터네트워크의 시너지효과를 바탕으로 통합 네트워크솔루션을 제공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네트워크를 합병함에 따라 노텔은 이제 세계 150개국에 지사를 두고, 17나라에 총 48개의 연구소를 거느린 종업원 8만명, 매출 180억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국제기업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사업내용에 있어서도 LAN(LOCAL AREA NETWORK), WAN(WIDE AREA NETWORK), 통신사업자의 망 등을 통해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에서 음성은 물론 데이터와 영상까지를 전달하는 토털네트워크회사 체제를 갖추었다.
노텔은 합병후 곧바로 조직을 재구성했다. 시너지효과를 노리기 위해서다. 특히 베이네트워크의 대표였던 데이비드 하우스씨를 노텔사장과 겸임케 하고 IP네트워크와 마케팅을 담당하도록 했다. 베이네트워크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겠다는 의도다.
노텔은 이와함께 ATP(ADVANCED TECHNOLOGY PROGRAM)라는 일종의 경영혁신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APT는 새로운 사업 개발 핵심경쟁력강화와 기술의 활용 기반 경쟁력 구축 등 세가지 방향으로 추진중이다.
이를 위해 노텔은 네트워크 관련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중소업체들을 잇따라 인수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보면 광대역 무선네트워크 기술의 리더격인 브로드밴드네트워크사를 인수한데 이어 IP접속장치 분야의 선두주자였던 마이콤 커뮤니케이션즈, 테라비트급 스위치 개발회사인 아비시 시스템(AVICI SYSTEM)사의 지분(20%)을 인수했다.
노텔은 베이네트워크와 합병하기 전인 지난해 매출 154억4,800만달러에 8억1,200만달러의 이익을 올렸다. 올해 1·4분기 매출은 35억1,000만달러로 97년 동기대비 8%가 증가했다.
베이네트워크의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내년부터는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 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텔은 다만 이익에 있어서는 기존의 성장세를 계속 이어갈지에 대해 뚜렷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음성위주에서 데이터위주로 사업을 전환해 가는 과정에서 데이터분야에서 거두는 수익증가 보다는 음성분야에서의 시장 감소가 예상보다 더욱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같은 우려는 지난해 말부터 불어닥친 아시아 및 남미시장의 불황으로 인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아시아와 남미지역은 데이터네트워크 시장보다는 음성위주의 제품시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텔의 음성 스위치장비중의 대표적인 제품인 PCN(PUBLIC CARRIER NETWORK)은 올해 1·4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나 하락했다.
시장분석회사인 톰슨 캐너간사의 리차드 우씨는 『1·4분기만의 실적으로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12% 하락은 예상밖의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대해 존 로스(ROTH) 노텔 부회장은 『음성위주의 스위치 장비 판매율이 하락한 것은 8년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더구나 당시에는 음성관련 제품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때다. 그러나 지금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4%에 불과해 타격이 크지 않고 고속 데이터 네트워크 분야에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텔은 그러나 있을지도 모를 불황에 미리 대비하고 있다. 노텔은 올해 약 3,000명의 인원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불요불급한 인원을 줄임으로써 1인당 생산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인원을 줄이더라도 전체 인건비는 줄이지 않을 방침이다. 다시말해 인원은 줄이되 기존 인원에 대한 보수 및 복지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노텔의 중앙연구소 옆에는 인공 150평 규모의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여러마리의 오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연구소의 캐롤 심스씨는 『거대한 부지의 연구소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수도 있는 야생동물 생태계 파괴에 대한 보상으로 연못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치열한 기술경쟁을 펼치면서도 자연을 생각하는 노텔의 세심한 배려에서 기술개발도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느낄 수 있었다.【오타와(캐나다)=백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