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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83년 설립된 유서 깊은 영국 명품 카페트 제조업체 '브린튼스 카페트(Brintons Carpet Limited)'사의 한 임원은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바이어 회의에 참석했다가 회의장 바닥에 깔린 카페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해당 카페트가 이 회사가 주력으로 생산하는 카페트 '에스파냐(Espana)'를 그대로 복제한 국내 중소기업 A사의 모조 제품이었던 것.
브린튼스는 곧바로 자사의 카페트 디자인을 무단 복제해 모조품을 만들고 인터넷 광고를 한 A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소송을 걸겠다고 통보했다. 잘못을 들킨 A사는 결국 지난 주 브린튼스에 공식 사과를 하고 일부 배상을 하는 한편 재발방지까지 약속하는 선에서 합의를 봐야 했다.
국내 고가제품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해외업체들이 그동안 제품 디자인을 무단으로 복제한 국내 중소기업에 대한 감시망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해외업체와 국내 중소기업간 디자인 무단 도용 소송이 최근 많아지면서 법원에서도 디자인 저작권에 대한 권한을 크게 인정하는 추세여서 국내 중소기업들의 대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앞으로 디자인 저작권에 관한 법적 시비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중소기업들도 저작권위반으로 불이익을 보지 않도록 사전에 법률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등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게 법조계의 조언이다.
20일 법무법인 광장에 따르면 이 회사가 법적 절차를 대리한 브린튼스는 이번 A사 사건을 계기로 현재 제품을 수출하는 한국 및 아시아 지역 전체에 자사제품 복제품에 대한 강력한 법적조치를 추진할 계획이다. 그동안 무분별하게 카페트 디자인을 복제해 온 국내업체들을 더 이상 두고만 보지 않겠다는 것.
법무법인 광장의 이은우 변호사는 "단순한 문양으로 보고 자칫 무심히 넘겨짚기 쉬운 도안이나 디자인도 저작권법으로 엄격하게 보호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라며 "저작권법 위반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것은 물론, 거액의 민사소송 배상금까지 물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실제로 최근 자사와 유사한 디자인 제품을 제조ㆍ유통하는 국내 기업에 대해 법적 시비를 가리려는 해외업체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스포츠용품 회사인 폭스헤드의 경우 지난해 이 회사의 여우 머리 문양 및 영문 'FOX'를 형상화한 도안과 유사한 상표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국내 중소기업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을 낸 바 있다. 이 소송은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홍승진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고가제품에 대한 시장이 꾸준히 커지고 있다 보니 저작권 보호에 대한 외국업체들의 관심도 최근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해외업체 제품이라도 국내 저작권법만으로도 충분히 보호할 근거가 있어 법적시비를 가리는 문제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와 산업계에서는 특히 의류, 생활소품, 가구 등 상대적으로 디자인이 중요시되고 교묘하게 해외업체 디자인을 카피한 제품이 범람하는 시장일수록 앞으로 저작권 침해 문제를 피해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2000년 7월 저작권법 개정으로 '응용미술저작물'에 대한 정의가 신설된 이래 최근 들어 디자인권의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저작권만으로도 보호할 수 있는 문양, 도안, 디자인 등의 범위를 크게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중소가구업체 관계자는 "중소가구업체 사장들이 부스도 설치하지 않으면서 세계적인 가구전시회에 꼬박 참가하는 이유는 해외 명품 가구들의 사진을 찍어와 국내에서 약간만 변형시킨 채 복제품을 제조하기 위한 것"이라며 "어차피 해외업체들이 일일이 복제품을 체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디자인을 약간만 변형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홍 변호사는 "해외업체 제품의 디자인을 약간만 변형해 국내 유통했다 하더라도 충분히 법적시비를 요구할 수 있다"며 "중소기업들도 제품 유통 전에 디자인에 대한 법 위반 여부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