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은행들의 영업방침은 명확하다. 직원 1인당 얼마나 이익을 낼 수 있느냐다. 이익이 적다면 인원조정을 통해 적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게 기본이다.』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의 말이다. 이처럼 외국 은행들의 지상 목표는 생산성과 효율성.
◇여전한 덩치 키우기= 반면 우리 은행들의 영업방침은 「무조건 많이」다. 합병한 대형은행이나 정부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기사회생한 은행, 모두가 제각각 특판상품을 내놓고 고객 돈 끌어모으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가 지난 97년말 기준으로 생산성을 비교한 결과, 국내 은행의 1인당 영업이익은 1억5,000만원 수준. 아메리카은행이나 HSBC 등의 2억6,000만원에 크게 못미친다.
금감위가 시중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경영정상화 이행계획에 대규모 감원을 못박은 것도 이 때문. 그러나 은행들은 감원을 추진하면서도 「덩치 불리기」 구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생산성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영업력은 제자리에서 맴도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발묶인 은행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튀면 두들겨 맞는게 우리 현실이다보니, 은행으로선 선택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국내에는 적은 인원으로 많은 수입을 낼 수 있는 수수료업무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새로운 수익원을 개발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
새로운 수수료를 만들거나 기존 수수료를 올릴 때마다 모진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민정서법」때문. 외국 은행들은 수수료 수입에서 전체 이익의 30% 이상을 건지고 있으나 국내 은행의 수수료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용조정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빛은행은 지난 23일까지 1~3급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으나 신청자가 극히 적어 고민을 하고 있다. 노조는 『경영진이 노조와 협의없이 금감위와 감원추진을 합의한 것은 노사협약위반』이라며 실력행사에 돌입했다. 노조 관계자는 『은행 경영이 부실해진 것은 관치금융 탓인데 경영진이 이를 종업원에 전가시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관」멍에에서 벗어나야= 한 은행장은 『은행이 더이상 금융기관으로 불려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은행이 마치 공익기관처럼 인식되다보니, 상업적 베이스로 탈바꿈하기 어렵다는 것. 그는 『주요 임원들마저 자신이 장사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채 관료적 타성에 빠져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은행은 곧 공공기관이라는 등식을 깨야만 금융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은행의 임원은 『타행 이체 수수료 부과에 반발하는 등 은행을 기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고객들의 정서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 은행 경영진들은 HSBC와 뉴브리지 등 외국 금융사의 입성에 은근한 기대를 거는 눈치다. 한 임원은 『외국 금융사들이 국내 영업을 확대하면서 그동안 우리 스스로 해결치 못했던 일을 용감하게 처리해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과금 수수료 부과문제나 대기업 여신, 관치금융 등 골칫거리를 외국 은행의 실력을 빌어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다. 외국 은행의 힘이 세질수록 국내은행들도 「금융기관」이란 멍에에서 벗어나고, 은행의 발목을 잡던 「국민정서법」도 약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상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