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회사가 살아있어야 파업도 하는 것 아닌가

세계 1위 현대重 20년만에 노사분규

영업적자 3조·주가 곤두박질 불구 노조 임금인상 갈등에 파업 강행

역지사지 정신으로 양보·타협 최악의 경영위기 함께 헤쳐가야


19년간 무분규를 자랑하던 세계 1위 조선업체 현대중공업에서 20년 만에 파업이 발생했다. 성과 위주의 연봉제 도입을 주장하는 사측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결과다. 울산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지난달 27일과 이달 4일 각각 4시간 시한파업을 벌였고 지난 17일에는 오전8시에 출근해 1시간만 근무한 후 3차 시한파업에 들어갔다. 17일 파업의 참가자 수는 조합원 약 1만8,000명 중 1·2차 때의 3,000명과 2,500명보다 줄어든 2,000명이지만 이들 중 100여명은 서울사옥에서 집회를 가졌다.


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올해는 3·4분기까지 영업적자가 3조원이 넘고 올해 초 25만원대였던 주가도 10만원대로 급락하는 등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조선업은 과거 유럽이 최강자였지만 수십년간 일본으로 주도권이 넘어왔다가 다시 한국이 세계의 조선업계를 지난 10여년간 호령해왔다. 최근에는 중국이나 필리핀 등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중이다. 세계 조선업계의 역사를 보면 임금 수준이 낮은 곳으로 조선업의 중심은 장기적으로 이동해왔고 우리 조선업계도 이러한 시대 흐름에 힘겹게 버티는 상황이다. 수년 전 한진중공업의 영도조선소를 폐쇄하고 필리핀으로 이전하는 문제로 철탑농성·희망버스·청문회 등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는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현대중공업까지 막대한 손실에 파업이 진행 중이니 조선업계의 위기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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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의 노사관계 역사는 시작부터 우리나라 대기업 노사관계의 축소판이었다. 1980년대 말 민주화 투쟁과 더불어 시작된 현대중공업의 노동운동은 1990년대 중반까지 골리앗 투쟁 등 한국의 강성 노동운동을 대표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회사의 복지우선 정책과 실리 중심의 노조가 호흡을 맞춰 근로조건이 개선되면서 노사관계가 안정됐다. 심지어 2004년 사내 하청 노동자의 분신사건 때는 현대중공업의 노조가 정규직 처우개선에만 치중하고 비정규직 보호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상급 단체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그 후에도 정규직 노조와 사측 간의 관계는 여전히 협조적이었으며 노사 협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널리 소개돼왔다. 노조 간부가 수주를 위해 외국 선주들을 방문하고 편지도 썼고 외국인 선주가 노조원의 노력으로 인도 날짜가 앞당겨졌다고 격려금을 내기도 했다. 그동안 협력적인 현대중공업의 노사관계는 대립적인 현대자동차의 노사관계와 대비돼 수 많은 사례연구의 대상이기도 했다. 창업의 뿌리가 같고 인접한 지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은 19년 무분규를 자랑했고 반면에 현대자동차는 지난 27년간 23번의 파업을 했으니 연구의 대상이 될 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 강성 집행부가 들어선 현대중공업에서는 20년 만에 파업을 시작했고 반면 현대자동차는 온건 집행부와 사측이 품질개선을 위한 위원회를 공동으로 가동하는 대조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노사가 협력을 유지하는 평균기간은 약 5년 정도라고 한다. 경영상황이 바뀌고 노사를 대표하는 담당자가 바뀌면서 노사관계도 변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파업은 많은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실망시킨다.

창업이래 최대 경영위기를 맞은 현대중공업은 누가 보아도 비상경영을 해야 할 시점이다. 현대중공업 파업 뉴스를 보며 가라앉는 배에서 산장과 선원들이 노를 들고 싸우는 장면이 떠오른 것은 나 혼자만의 상상일까. 노사 모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양보하고 타협하며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 회사부터 살려놓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업할 회사도 없어지는 것을 유럽과 일본의 사례가 이미 보여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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