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가구의 삶의 질이 20년 전보다 나빠진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등 소득이 꾸준히 늘어났지만 전세금의 증가속도가 더 가파른 탓이다. 때문에 중산층은 오락이나 문화는 물론 의료서비스에 있어서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실정이다.
12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우리나라 중산층 삶의 질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중위소득의 50~150%에 속하는 중산층의 월평균 총소득은 1990년 82만원에서 지난해 384만원으로 연평균 7.0%씩 증가했다. 총소득에서 세금과 이자비용 등 고정지출을 뺀 가처분소득 역시 같은 기간 70만원에서 316만원으로 매년 6.8%씩 늘었다. 저소득층(5.8%)과 고소득층(6.6%)보다 높은 증가율로 외형만 놓고 보면 중산층의 경제적 여유가 커진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중산층 삶의 질은 더 악화됐다. 가장 큰 이유는 매년 급증하는 전세금. 1990년 890만원에 불과했던 중산층의 평균 전세보증금은 2013년 1억1,707만원으로 급등했다. 연평균 증가율은 11.8%로 소득보다 훨씬 빨리 늘었다. 가처분소득에서 전세보증금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같은 기간 1.1배에서 3.1배로 뛰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산층 가구가 평균 가격의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3.1년을 꼬박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집을 사기에는 너무 벅차다. 소득증가에도 불구하고 가구원 수를 고려할 때 주택 구매 여건이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중산층의 자가 주택 주거 비율은 64.6%로 고소득층(73.6%)은 물론 저소득층(65.3%)에도 미치지 못했다. 1인당 주거면적 역시 고소득층의 26.5㎡, 저소득층의 24.6㎡보다 협소한 21.3㎡로 조사됐다.
교육비도 다른 계층에 비해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특히 가처분소득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중산층이 10.5%로 오히려 고소득층(8.3%)보다 컸다. 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음에도 불구하고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 참여율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게 영향을 미쳤다.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에 짓눌리면서 중산층은 여가와 의료비 지출을 줄여서 버티고 있다. 중산층의 총소비지출에서 오락·문화 관련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5.9%에서 2013년 5.3%로 하락했고 보건·의료비 지출 비중도 같은 기간 6.5%에서 6.4%로 줄었다. 다만 맞벌이 가구가 증가한 영향으로 월평균 외식 비용은 1990년 가구당 4만1,000원에서 2013년 32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한편 우리나라 중산층 가구주 표본은 고령화·저출산·고학력의 양상을 보였다. 가구주 연령은 1990년 38.2세에서 지난해 48세로 늘었고 대학교를 졸업한 가구주가 20.1%에서 46.5%로 급증했다. 가구원 수는 1990년 4명에서 지난해 3.4명으로 줄었고 맞벌이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37.9%에 달했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20여년간 우리나라 중산층 가구는 소득이 늘었지만 전세금 부담과 교육비 지출 증가로 오히려 삶의 질은 악화된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핵심 계층인 중산층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소득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주거부담 완화, 공교육 정상화 등 지출균형을 맞춰줄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