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삼천식객(三千食客)과 베푸는 삶

전국시대 중국은 왕권이 강화되면서 귀족의 권위가 약화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의 선비들은 각기 현실문제 해결책을 준비해 각 나라의 군주를 찾아 다니며 현실정치에 참여하려 했는데 이들이 바로 책사다. 책사들은 군주에게 추천될 기회를 얻기 위해 유력 인사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지냈는데 이들을 식객이라 불렀다. 제나라 맹상군(孟嘗君)은 전 재산을 털어 천하의 식객을 불러 모았으며 걸인이나 도둑까지도 신분 차별 없이 대우해 3,000명이 넘는 식객을 거느렸다. 제나라 민왕 25년에 맹상군의 현명함을 들은 진나라 소양왕은 맹상군의 방문을 요청했다. 소양왕은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으나 진나라의 대신들은 맹상군이 충직한 사람이므로 후환이 없도록 맹상군을 없애자고 했다. 이에 소양왕은 맹상군을 잡아 가둔다. 맹상군과 동행했던 식객들은 소양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을 찾아가 맹상군을 풀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그 후궁은 맹상군이 가지고 있는 흰 여우 가죽옷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흰여우 가죽옷은 이미 소양왕에게 바친 후였다. 맹상군을 구할 방법이 없어 고심하고 있을 때 가장 말석에 있던 개도둑 출신 식객이 나섰다. 그 식객은 그날 밤 왕궁의 창고에서 흰 여우 가죽옷을 훔쳐왔고 그것을 받은 후궁이 소양왕에게 졸라 맹상군이 석방됐다. 맹상군은 풀려나자마자 서둘러 달아났고 뒤늦게 속은 걸 알게 된 소양왕은 즉시 군대를 풀어 맹상군을 뒤쫓았다. 맹상군 일행은 한밤중에 국경 근처에 도착했으나 첫닭이 울기 전에는 관문이 열리지 않아 국경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한 식객이 닭 울음소리를 흉내내자 인근의 닭들이 함께 울기 시작했고 드디어 관문이 열리고 맹상군 일행은 무사히 진나라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맹상군은 후일 제나라와 위(魏)나라의 재상을 역임하고 독립해 제후가 됐다. 후세 사람들은 맹상군이 닭울음소리(鷄鳴)와 개도둑(狗盜)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것을 두고 ‘계명구도(鷄鳴狗盜)’라고 불렀다. 맹상군이 주위를 위해 베푸는 삶 대신 자기 안위와 재물을 모으는 데만 주력하고 식객들을 소홀히 하고 무시했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은 재산의 대부분을 자녀에 상속하는 대신 사회에 환원, 기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뜻 있는 분들의 훈훈한 기부와 선행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점점 심화되고 있고 막바지 피서가 절정인 요즘 휴가는커녕 끼니 걱정이 앞서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다양한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성과는 미지수다. 정부만 바라보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조금씩만 더 주위에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기부는 꼭 유명인들만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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