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제재조치로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연임이 어렵게 된 일련의 과정은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국민카드 합병과 관련한 회계기준 위반을 둘러싼 시비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증권선물위원회는 국민은행이 합병 전 국민카드가 설정해야 할 대손충당금을 합병 후 국민은행의 합병 관련 대손충당금 전입액으로 잘못 처리해 결과적으로 손실이 과대하게 계산돼 세금을 덜 냈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민은행측은 국세청에 질의한 결과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공식적으로 받았다고 밝혔다. 증선위는 또 카드채권 자산유동화 때 신용공여 약정에 대한 회수율 하락을 반영하지 않아 지급보증충당금을 덜 쌓았다고 지적했으나 국민은행측은 평균 회수율을 적용한 후 추후에 충당금을 늘려가는 관행을 따랐을 뿐이라고 밝혔다.
회계기준을 둘러싼 금융감독 당국과 은행의 견해가 이토록 다를 수 있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외환위기 이후 원칙 없는 고무줄 기업회계기준을 글로벌 기준으로 바꾸어 투명하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기업을 인수 및 합병을 할 때 세금을 적게 내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래도 회계기준을 적용하면서 상당한 절세를 하게 될 경우 혹시나 싶어 국세청에 질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세금에 관한한 국세청이 괜찮다고 하면 안심해도 된다고 볼 수 있는 게 관행이 아닐까. 더구나 회계처리는 삼일회계법인이란 국내 굴지의 회계법인이 한 것이다. 전문가에게 맡기고 국세청에 물어 처리했는데도 중징계를 받게 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앞으로 회계로 말미암아 다치지않기 위해서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 것인가.
회계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국내의 기업 인수 합병기준이 애매 모호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당국은 회계기준도 명확히 마련하지 않은 채 기준을 엄격히 적용, 징계를 내렸다는 비난을 들을 만 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차제에 관련 회계기준을 명확히 정리해 기업들이 날벼락을 맞지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징계를 다루는 당국의 태도에도 문제가 많다. 증선위 결정이 사실상 최종 판결과 같다고 하더라도 금융감독위원회의 의결을 거치기 전에 금융감독원이 먼저 김정태 행장의 연임 불가를 못박고 나선 것은 볼썽 사납다. 지난해 SK글로벌ㆍLG카드에 대한 금융지원을 거부한 김 행장에 대한 해묵은 감정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왜 나오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국내 최대은행의 행장이 물러간다면 비외국계 은행장들은 정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자칫 금융산업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켜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저하시킬 수 있다. 김 행장에게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관치금융 의혹을 불식시키면서 금융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번 사태를 원만히 수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