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주 북(北) 1번가에 들어서면 한국의 벤처기업들이 입주한 실리콘밸리 해외IT지원센터(아이파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지난 2000년 미국 경기침체로 닷컴거품 붕괴 때만 하더라도 입주율이 67%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32개 사무실이 모두 꽉 찼으며, 5개 회사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혹시라도 자리가 날까 순서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2000년부터 이어진 불황의 긴 터널을 뚫고 미 경제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파르지는 않지만 완연한 회복의 신호를 보임에 따라 세계 벤처산업의 요람이자 벤처경기 풍향계 역할을 하는 실리콘밸리에서도 경기회복의 기대감이 솔솔 피어 오르고 있다. 북 1번가 주위에 있는 삼성전자와 인텔, 하이닉스, 이베이 등 세계 굴지의 다국적기업들에게 부품과 기계장비를 납품하기 위해 찾아오는 벤처기업들의 발걸음도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아이파크에서 실리콘밸리 경기동향을 조사하는 김종갑 이사는 “안정된 실업률과 벤처투자 회복, IPO 증가, 재고보유율 감소 등 실리콘밸리에 봄 햇살이 스며들고 있다”며 “지난 90년대 후반의 활황은 아니지만 서서히 경기회복이 진행되는 시그널은 분명히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 벤처산업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미 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캐피털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금액은 209억 달러로 2003년의 189억 달러보다 10.6% 증가했다. IT 버블이 붕괴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인 끝에 4년 만에 처음으로 상승 반전한 것이다. 지역별로는 벤처산업의 메카인 실리콘밸리가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해 이름값을 했으며, 다음으로 보스턴 등 뉴잉글랜드 지역이 15%를 나타내 벤처경기 회복이 특정지역에 편중되지 않고 폭 넓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캐피털 투자기업의 주식시장공개(IPO)와 조달자금 규모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지난 2000년 265개에 달했던 IPO 기업 수는 2001년(41개), 2002년(24), 2003년(29개) 등 부진을 면치 못했지만 지난해에는 93개로 증가,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지폈다. 이들 기업이 IPO 공모를 통해 조달한 자금도 2000년 330억 달러에서 2001년(41억), 2002년(25억), 2003년(20억) 등을 나타내며 해마다 감소했지만, 지난해에는 110억 달러를 기록해 다시 세자리 수를 회복했다. 지난해 성사된 IPO의 30% 가량이 4ㆍ4분기에 이루어진 점을 들어 대부분의 월가 전문가들은 올해에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IPO시장이 호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프로티지펀드의 벤 홈스 애널리스트는 “시장침체로 수년간 IPO을 꺼렸던 벤처기업과 투자 회사들이 대거 시장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유동성도 대단히 풍부한 상태”라며 벤처산업 낙관론을 폈다. 고용시장도 회복세가 뚜렷하다. 실리콘밸리의 경우 지난 2000년말과 2003년말 사이에 26만8,000명이 직장을 잃었지만 지난해부터는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신규고용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벤처경기 회복은 미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5시간 거리인 어바인시도 밀려드는 벤처기업들의 입주를 소화하기 위해 벤처단지와 오피스빌딩을 짓느라고 망치소리가 요란하다. 베스 크롬 어바인 시장은 “지난 90년대 말과 같은 벤처산업 열풍은 아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벤처기업들의 입주요청과 문의가 크게 증가했다”며 “실리콘밸리의 벤처바람이 남부 캘리포니아로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뉴욕에 위치한 대학들도 해외 벤처기업 끌어들이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맨해튼에 위치한 페이스대학은 미국 경기회복과 함께 벤처산업이 살아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올들어 한국, 중국 등 아시아 벤처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대학의 빅토르 골드스미스 경영대 부학장은 “미국의 벤처산업이 긴 침체의 터널을 통과했다는 확신을 갖고 있으며, 벤처기업에 평균 10%의 지분을 참여하는 방식으로 기업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벤처기업 유치를 놓고 다시 한번 유수의 대학들이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게이츠 회장도 벤처 산업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그는 “미 경제와 IT산업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90년대 후반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벤처기업들이 새로운 제품에 투자하려는 의자가 굉장히 높다”며 벤처경기 회복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바야흐로 미국 경제에 벤처부활의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