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설득력 없는 '기름값 폭리' 주장

네명의 선수가 멀리뛰기 시합을 했다. 모두 비슷한 거리를 뛰었다. 그런데 기록을 보니 한 선수가 유독 멀리 뛴 것으로 나왔다. 왜일까. 당연히 잘못 적었기 때문이다. 같은 거리를 m와 야드, 즉 서로 다른 단위로 측정하면 당연히 야드로 쟀을 때 더 높은 숫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물론 육상경기에서 이처럼 ‘엿장수 마음대로’ 단위를 달리해 기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장에서는 실제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기름값 폭리를 파헤치겠다고 나선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이 폭리의 근거라고 제시한 4대 정유사의 가격 비교자료가 그것. 4개 정유사의 세후 휘발유 공장도가격을 제시한 것을 보면 SK가 리터당 1,355원, GS칼텍스가 1,367원, 현대오일뱅크가 1,353원인 반면 S-Oil은 1,304원이다. 이를 근거로 진 의원은 “S-Oil을 제외한 나머지 정유 3사의 세후 공장도가격이 리터당 50원 이상 높았다”며 “나머지 3사가 담합해 폭리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SK와 GSㆍ현대오일뱅크의 공장도가격은 주유소 판매 전에 작성한 기준가격이다. 실제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은 이보다 싼 게 현실이다. 왜냐하면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할인을 해주기 때문이다. 반면 S-Oil의 가격은 일부 주유소에 공급한 ‘실제’ 평균가격이다. 쉽게 말하면 이미 할인을 한 가격이다. 할인하지 않은 가격과 할인한 가격. 당연히 할인한 가격이 싸다. 더군다나 석유공사의 페트로넷에 공시돼 있듯 소비자들이 주유소에서 사게 되는 휘발유가격은 정유 4사가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여부를 조사하고 있을 정도다. 진 의원 논리대로라면 오히려 S-Oil 주유소들이 폭리를 취한다고 봐야 한다. 최종 소비자가격이 4사가 비슷한데 유독 S-Oil 주유소만 싼 공장도가격으로 기름을 사온다면 그만큼 S-Oil 주유소들이 3사 주유소보다 더 많은 유통 마진을 챙기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같은 오해와 혼선이 빚어지는 이유는 진 의원이 지적한 대로 정유사의 ‘이중가격구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의 고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전에 기준가격을 발표한 뒤 실제 대리점이나 주유소에 공급할 때는 시장 상황에 따라 할인을 해줘야 하는 현재의 정유 업계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 그렇다 해도 굳이 다른 기준을 동원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바쁜 정유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부른 진 의원이 과연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정유 업계의 폭리구조를 파헤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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